선거 때면 곁가지 취급받는 문화예술
이젠 생활문화 전성시대에 걸맞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문화공약 나왔으면

▲ 홍영진 문화부장

요즘 지역언론 문화부 기자들이 바쁘다. 구군은 물론이고 다양한 문예기관·단체들이 기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그 동안 수행해 온 예술사업과 향후 펼치게 될 문화정책들을 홍보하는데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화행사가 많아졌다는 것이고, 이를 주관하는 유관단체가 일일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지역 문화부 현장만 20년 가까이 돌고 돈 경험에 비춰볼 때, 최근 2~3년 새 이처럼 달라진 지역문화풍토가 얼마나 낯선 지 모르겠다.

얼마 전 도시재생 및 문화예술사업과 관련한 심의에 다녀왔다. 심의를 받으러 온 대상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또 한번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 각종 문화와 예술사업은 그동안 문예단체 관계자들이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업의 취지에 맞거나 수긍할만한 아이디어, 실현가능한 실행계획을 갖췄다면, 굳이 문화예술과 인연이 없는 개인이나 일반인 일 지라도 지원사업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지역 청년문화층이 보여주는 대외활동 역시 지역문화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주요인이다. 울산에서의 청년문화운동가는 비바람 치는 광야를 우산없이 걷는 나그네에 비유됐다. 그만큼 버텨내기도, 지속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달라지는 추세다. 자신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만 하던 그들도 바뀌었다. 지역사회(혹은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뜻을 이해시키는 전략적 겸손의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문화인력이 늘어나면, 문화판은 덩달아 뜨거워 질 수밖에 없다.

6·13 지방선거 열풍이 달아오르면서 울산의 이같은 변화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문화부기자로서 지난 20년의 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면,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선거공약 중 유난히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문화예술 부문이다.

이번 선거와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문화예술과 관련한 후보들의 논쟁이 부족하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촉박했던 선거일정 영향도 있었겠지만, 정치와 사회분야 토론에 문화예술이 곁가지로 끼워져 논의되는 행태는 ‘누구나 예술하는 생활문화 전성시대’의 시민으로서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문화예술 논의가 더 활발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성장세가 꺾인 산업수도 위기감이 첫번째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민문화수요가 두번째다. 관광도시 가능성을 이어가는 정책도 문화예술을 떼어놓고는 논의가 안된다. 미래인재를 키워내는 백년대계 교육정책 역시 상상력과 창의력의 발로인 문화예술교육을 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회적 통합과 결속력을 높이는 면에서도 문화예술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문화예술 예산을 늘리겠다’는 두루뭉술한 공약은 듣고싶지 않다. 문화예술에 돈이 들어가야 하는 건 맞지만, 꼭 돈을 많이 푼다고 해서 저절로 ‘문화도시’가 되는 일도 아니다. 미술관을 이렇게 세우느니, 도로를 디자인하겠느니, 거점센터를 유치하겠느니 이런 내용 역시 짧은 한 줄이면 될 것이다. 그 보다는 도시문화 본연의 정책에 관해, 예술진흥에 대해 좀더 구체안을 밝혀주면 좋겠다. 후보 개인의 문화관과 문화생활에 관해서도 적극 알려주면 좋겠다. 무엇을 읽고 자랐으며, 어떤 장르의 예술을 좋아하고, 성인이 된 이후로 어떤 문화생활을 취미삼아 해왔는지 궁금하다. 주민들의 대표자를 뽑는 일인만큼 우리는 그들의 교양과 문화예술감각이 어떤지 알고싶고,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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