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부터 100수 넘어도 ‘노인’
부양대상자로만 내몰지 말고
개인의 경륜·욕구 존중되어야

▲ 손경숙 울산중구시니어클럽관장 전 한국시니어클럽협회장

경로식당 ‘목련의 집’ 봉사자 한 분이 화사한 꽃무늬 모자를 쓰고 씩씩하게 들어선다. 두 정거장을 걸어왔다며 두런두런 오는 길에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시내버스에 올라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버스 중간쯤에 않았던 청년이 벌떡 일어서며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더란다. 주변을 둘러봐도 할머니가 없는데…. 순간 자신을 향한 자리양보라고 생각되자 고마운 마음에 앞서 울컥 무안해 지더란다.

자식들이 결혼하고 손자들을 보았으니 분명 할머니가 맞다. 그러나 60대 중반의 자신을 스스로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이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던 학생들에 의해 ‘할머니’라는 낯선 이름을 내 것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고, 갑자기 인생 막바지에 와 있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되더란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못 들은 척하고 꼿꼿이 서서 한 정거장을 더 와서는 슬그머니 내리고 말았다 한다. “할머니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는 없지만 마음은 아직 할머니가 될 준비가 안 되었던가 봐요”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얼굴에 서글픈 표정이 슬쩍 드리워진다.

할머니가 되고 노인이 되는 것이 어쩌면 긴 인생 항로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홀가분해져 자기발전이나 자아성찰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 즉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노인부양론’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노인세대가 부양대상 집단으로 인식되는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노인은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축적된 지식과 여러 상황들을 해결했던 경륜이 결집된 지역의 어른이다. 정보력이 다소 떨어지고 순발력이 좀 부족하다하여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60대부터 100수가 넘는 고령에 이르기까지 부양대상자로 일반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느 노 교수는 인간 생애주기 중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기가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난 60대부터 70대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람의 한 평생이 엄마 배속에서 태어나 전적으로 엄마 젓꼭지에 의존한 유아기를 시작으로 영아기,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로 성장하게 된다. 성년이 되고 제 길을 꾸려 갈 때쯤인 청년기가 되면 사회적·정서적 독립을 꾀하게 된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워내고 사회의 일원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장년기를 맞아 책임이라는 배낭을 메고 고지를 향해 오르다, 저만치 생의 정상이 보이는 시기가 어느새 60대로 훌쩍 들어선 노인세대가 아닌가싶다.

이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해도 좋은 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빠른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노인으로 보내야 할 기간이 턱없이 길어진 것이다. 팔짱끼고 앉아 자식과 국가의 지원이나 보호를 요구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에 봉착해 있다.

산업동력인구로 유입된 세대가 대거 노인으로 진입하는 울산은 더욱 그렇다. 저 출산에 의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도 불을 보듯 빤하다. 노인의 건강한 활동과 경륜축적의 지혜가 이제 국가노동력 제고의 또 다른 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노인의 적절한 활동이 장수국가 일본의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던 ‘고립사회와 고독사’ 방지의 유용한 대안이라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한 때이다.

연령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욕구를 중시하는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노인의 열정이 국가나 지역사회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손경숙 울산중구시니어클럽관장 전 한국시니어클럽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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