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1833년 11월23일 제네바 신문은 내과의사 아이삭(Francois Isaac)이 스위스 베이리에 살레브 동굴에서 산양이 새겨진 동물 뼈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초로 발견된 선사미술품이다. 당시 이 그림을 선사시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사시대(prehistoric ages)라는 개념조차 불명확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선사학(prehistory)이란 학문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이런 유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1700년 런던의 약사 코니어스(John Conyers)는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마스토돈(Mastodons 멸종 코끼리 일종) 이빨과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골동품 애호가였던 백포드(John Bagford)는 이 유물을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공략했던 한니발 무리가 남긴 것이라고 보았다.

1774년 독일의 철학자 에스퍼(Johann F. Esper)는 프랑켄 지방의 가일엔루트 동굴에서 인골과 동물 뼈를 찾아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는 기록을 남겼다. 1797년 프리어(John Frere)는 영국 서포크 지방에서 거대한 동물의 턱뼈와 돌도끼를 찾아 금속을 모르는 집단이 남긴 무기라는 견해를 런던 고대유물학회에 발표했다.

▲ 산양이 새겨진 구멍 뚫린 뼈막대기, 스위스 제네바 미술역사박물관 소장품.

이런 기록들은 많지만 이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연대는 구약성서에 적힌 창세기(創世記 Genesis)를 넘어설 수 없었다.

17세기 아일랜드 대주교 어셔(James Ussher)는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에 있었다고 했다. 라이트풋(John Lightfoot)은 기원전 4004년 10월23일 오전 9시라는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까지 제시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창세기 이전의 존재, 선사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자칫 이단자로 몰리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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