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3)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도시 어느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게
가장 높은 싱구라타 언덕에 세워진
쉐다곤 파고다는 그야말로 황금의 산
    
중앙 탑 주변의 수많은 신자들
그들이 올리는 경배의 대상은 뭘까
황금의 탑인지 부처의 머리카락인지

석양을 되뿜는 황금빛이 휘황할수록
양곤 강 건너 달라마을에 드리우는
불탑의 그림자는 짙은 어둠만 더해

‘황금과 미소의 나라’ 미얀마의 별칭이다. 웬만한 사원의 불상들은 어김없이 금박을 입고 있다. 도금이나 금칠이 아니라 순금덩이를 종잇장처럼 얇게 펴서 불상에 입히는 금박이다. 요즘 금값으로 보면 호화롭기 짝이 없는 불사임에 분명하다. 불상만이 아니다. 어마 무시한 크기의 탑들에게도 금박이 입혀진다. 설악산 흔들바위만한 크기의 짜잇타요 파고다는 바위에서부터 금박을 입혔다. 동네마다 사원이 있고, 사원마다 황금으로 도배한 탑과 불상을 가지고 있으니 가히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 하다.

▲ 양곤을 대표하는 쉐다곤(shwedagon) 파고다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싱구라타 언덕의 정상부에 세워진 그야말로 황금의 산이다.

물론 이 나라가 금 생산량이 많기 때문도 아니며, 금값이 싸기 때문도 아니다. 신자들의 경제 형편이 넉넉해서도 결코 아니다. 미얀마는 2017년 기준 국민소득이 1300달러 남짓이어서 세계 150위권에 머물고 있는 나라이며, 게다가 빈부의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로 손꼽힌다. 미얀마 인들의 지극한 불심을 보여주는 것일까? 넉넉지 않은 소득도 금박불사를 위해 기꺼이 봉헌하는 서민들이 있기에 불상들은 나날이 번쩍이고 있다.

양곤을 대표하는 쉐다곤(shwedagon) 파고다는 그야말로 황금의 산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싱구라타 언덕의 정상부에 세웠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정한 것이다. 당연히 그곳은 부처가 계시는 수미산의 상징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주랑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성스러운 부처의 세계로 인도한다.

대개 경이로운 기념물들에는 전설적인 배경이 입혀진다. 2500년전 석가모니로부터 직접 전해 받은 불발(부처의 머리카락)을 모시기 위해 이 불탑을 만들었다는 전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임을 자랑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고고학자들은 6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현재의 규모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 쯤이다.

정상에서 만난 황금의 파고다는 경악 그 자체가 된다.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불탑의 위용이 장엄한 부처의 세계를 연출한다.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원형의 기단부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탑돌이 길을 만들고, 탑신부는 종모양으로 우아한 곡선을 이루다가, 상륜부에서 마치 안테나처럼 하늘로 솟구친다. 하늘세계와 교신하는 모습이다. 미얀마 불탑의 전형적인 형상이나 태양에 반사되는 황금 빛은 비교할 바가 없다.

중앙 불탑의 크기나 높이, 황금도배도 경이적이지만 이를 에워싸는 주변건물의 다양함과 섬세함, 호화스러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높이 99m에 이르는 탑을 황금으로 입히는데 7t이 들었다 한다. 그것도 모자라 상륜부에는 수천개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 온갖 보석으로 치장했다. 그야말로 탑 전체가 보물중의 보물이며, 국보중의 국보이다. 물론 이 거대한 불사는 왕실의 후원으로 건설된 것이지만 인구의 85%가 불교신자인 백성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앙 탑 주변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끊임없이 경배를 올린다. 무엇에 경배하는 것일까? 찬란한 황금 탑인가, 아니면 그 안에 부처의 머리카락인가? 무엇을 기원하는지도 궁금하다. 현재적 삶의 고통인가, 내세의 해탈일까? 끊임없는 의문으로 탑 주변을 돌고 있으니 황혼이 지고 있다. 석양을 되뿜는 황금빛이 휘황할수록 탑의 그림자는 어두워진다.

양곤시내에서 강을 건너면 서민들의 삶을 민낯으로 만날 수 있다하여 페리를 타고 ‘달라’마을로 향한다. 양곤 강은 동남아의 여느 강처럼 황토 빛 흙탕물이 흐른다. 항구에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오가는 페리같은 큰 배가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오가는지 배안은 인산인해에 장사치들의 목청으로 정신이 없다. 미소가 사라진 사람들의 무표정을 가득 실은 채 강을 건넌다.

시장은 입구부터 시궁창이다. 길은 물론이거니와 매장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웬만한 생물에는 파리 떼가 완벽히 달라붙어 물건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벌건 대낮에도 어두침침한 매장에 가난에 찌든 얼굴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관광객과 눈을 맞춘다. 씨엠립에서 잘못 들어갔던 중앙시장 생각이 난다. 아마 그곳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더 나을 것이 없다.

무엇이 미얀마의 진짜 얼굴일까? 문득 불가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조주(趙州)선사의 무자(無字)화두가 떠오른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의 답은 ‘있다’와 ‘없다’의 경계를 초월한다. 핵심은 ‘삼라만상에 불성이 없는 것은 없다’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위대한 고승을 모시기 위해 왕이 큰 선원을 지으려 하자 그는 “풀 한포기라도 건드리면 조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던 사람이다. 황금으로 불상이나 불탑을 도배해야 불성이 빛나는 것은 아닐진대. 쉐다곤 황금 불탑의 그림자는 달라 마을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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