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태왕의 말에 거련태자와 장화왕후와 상희공주, 중신들이 모두 부복했다.

태왕은 침상에 기대어 태자 거련을 보며 엄히 선포했다.

“태자는 지금부터 나의 왕위를 잇되,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라.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중신들을 존중하라.”

“예, 알겠나이다.”

거련은 명을 받들고 고개를 숙였다.

태왕은 장화왕후와 상희공주를 보며 엄하게 말했다.

“왕실은 태자를 짐을 대하듯 받들고, 일절 외척의 권력을 행사하여 섭정하지 말라. 또한 나의 비빈과 소생들을 선대하고 죽이지 말라.”

“알겠사옵니다.”

장화왕후와 상희공주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장화왕후는 속으로 웃었다. 이미 태왕이 죽으면 막리를 비롯한 6왕자들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놓았다.

태왕은 중신들을 마치 아들을 대하듯 자애로운 눈으로 보았다.

국상 을력소와 울절 밀운 장군, 태대사자 고척동과 조의두대형 연개남에게 말했다.

“을력소, 밀운, 고척동, 연개남 장군.”

태왕은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수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그대들은 나의 형제요,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빚을 졌다. 이제 마지막 빚을 지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버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린 새 왕을 올바르게 보필하여 왕업을 튼튼하게 하고 국태민안을 이루도록 하라.”

“폐하, 알겠나이다.”

“목숨을 다해 명을 받들겠나이다.”

중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태왕은 전쟁터에서는 호랑이 같았지만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어버이처럼 자상했다. 이제 병들어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풍습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광개토태왕을 따라 순장될 각오마저 있었다.

중신들이 눈물을 흘리자 거련과 상희도 눈물을 흘렸다. 덩달아 장화왕후도 눈물을 짜내어 그예 소리 내어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태왕이 말했다.

“울음을 멈춰라. 나는 평생 살인마로 살았다. 갑자기 역병이 들어 부처님 전에 나아가 참회할 시간도 얻지 못했다. 나는 죽어서 살인마들이 가는 팔열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그대들 영혼을 위해서 울어라.”

태왕은 호흡이 턱밑까지 차올라 잠시 말을 쉬었다.

그때 시관이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

“폐하, 폐하를 아버지라 부르며 꼭 임종을 하겠다는 분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고합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호랑이: 【S】ghaullum(가울럼), 【E】tiger. 조선조 어린이를 위한 한자학습서 <훈몽자회>(1527)에는 범 호(虎)자를 ‘갈웜 호’라고 명기해 놓았다. ‘갈웜’은 칡범(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줄무늬가 있는 범)의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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