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앞둔 조선산업역군 하명호 기원(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 하명호 현대중공업 기원.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36년전 입사, 플랜트 시운전 맡아
20년 넘게 세계 곳곳의 바다 누벼
화재·배멀미는 아직도 안줏거리

지난 4월초 구조조정 발표에
열흘간 고민하다 희망퇴직 결정
6개월 남은 정년 못채워 아쉽지만
인생 1장만 끝냈다고 생각

남아있는 후배 생각하면 안쓰러워
일감확보는 경영자보다 지부장이
안정된 일자리는 사측이 더 힘써야

“일주일을 고민하다 결정했다. A4 용지 두 장에 지난 36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근무로 주·야간을 밥 먹듯이 했고 버스 통금(통행금지)에 걸려 성내삼거리에서 노숙 아닌 노숙을 하며 아침 찬 이슬을 맞고 출근하던 기억, 일과 후 늦은 시간에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우동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1982년 입사 후 처음 보는 커다란 배의 크기와 웅장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박 건조에 투입됐던 때, 해양사업부 소속으로 20여년간 전 세계 바다를 누벼왔고 플랜트 시운전 업무에 작업허가서(PTW) 발행 업무까지, 현대중공업은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올해 연말이면 정년을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었지만, 막상 후배들을 위해 희망퇴직에 서명을 하고 나니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회사생활에 후회는 없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 후배들의 처진 어깨를 보면 마음 한 켠이 무겁지만 묵묵히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의 현대중공업이 있었지 않나 싶다.”

지난 198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올해 연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희망퇴직에 서명한 하명호 기원(60·해양사업본부)의 얘기다. 오는 8월1일 퇴직하는 조선산업 역군 하명호 기원을 만나 그의 이야기와 삶, 노사에 바라는 점 등을 직접 들어봤다.

◇36년, 청춘을 회사에 바치다

“유난히 바람불던 그 해(1982년 11월), 첫 눈이 반갑지만은 않은 추위와 잦아든 초겨울 날씨를 뒤로 하고 전하동 현대중공업 담벼락 게시판에 파란색 잉크 물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죠. 그렇게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내 인생 첫 직장이자 마지막이 된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배에 오르는 순간에서부터 호기심과 함께 수많은 철 조각 하나하나가 마치 퀴즈 퍼즐처럼 완성돼 진수의 기쁨도 함께 했죠. 이후 대한민국 해군 군함 건조에서부터 일반 상선보다 비교가 안되는 작은 군함을 건조했습니다. 수많은 군함들이 시험 운전을 거쳐 인도됐고, 지금도 대한민국 바다를 수호하고 있다니 이런 뿌듯한 감정과 희열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맛보지 않은 사람을 모를 것입니다.”

하 기원은 회사생활 36년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에서만 근무했다. 플랜트 시운전 업무를 맡아 인도, 리비아, 아프리카, 러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20년을 넘게 해외 곳곳의 바다를 누볐다.

지난 2016년 건강상 이유로 말레이시아를 끝으로 귀국한 하 기원은 돌아와서 몸을 추스린 뒤 현재 NASL 프로젝트에서 작업허가서(PTW·permit to work) 발행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해양사업부에서 풍운의 꿈을 안고 오대양 육대주의 대양으로 나간다고 하니 커다란 희망이자 꿈을 이룬 것 같았죠. 당시 근무하던 직원들조차 해외 나가는 경험이 전무했으니까요. 당시 비행기 안에서의 흡연이 허용되던 시절이었고, 화장실 다니던 길이 곤욕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옷이란 옷에는 담배 냄새가 배어있어 한동안 담배 내음이 가시질 않았죠. 먼 비행 끝에 인도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릿한 바다냄새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판잣집과 구걸하는 어린아이들, 역겨운 향신료 냄새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 현장에서 처음 경험한 충격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요.”

그의 옛 이야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공항에서 배를 타는 부두로 가니 뜨거운 날씨에 해상에 위치한 작업장으로 들어가는데 처음 타는 배인지라 심한 배멀미에 아예 혼절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20시간여 선박으로 긴 항해를 마치고 해상 플랫폼 작업장으로 들어가니 한동안 하늘이 뱅뱅 돌고 멍해 후유증이 며칠을 갔죠. 또 울산에서 제작해 한 달여간 항해중인 배의 배터리 룸이 화재로 소실돼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침구에서도 불이 난 적이 있어요. 당시 투입된 50여명의 직원 모두 잠을 잘 공간도 없고 식사는 식어빠진 날라다니는 인도산 현지 쌀에 단무지 한 조각, 사이다 음료수에 밥을 말아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안줏거리로 회자됩니다. 이처럼 묵묵히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열정을 베푸는 등 애사심을 가진 종업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현대중공업이 있는 것 같아요.”

▲ 퇴역앞둔 조선산업역군 하명호 기원(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연말 정년퇴직 앞두고 고심 끝 희망퇴직

하 기원은 지난 4월 초 노조소식지에서, ‘2400명 현대중공업 희망퇴직에 따른 구조조정 발표’ 소식을 듣게 됐다. 이후 10여일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회사를 뒤로하고 회사 측이 내민 희망퇴직 명부 A4 용지 두 장에 서명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욕심이 많이 났죠. 처음 입사할 때 목표가 ‘이 회사에서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는 것이었거든요. 돌아보면 회사생활에 후회는 없지만, 올해 연말까지만 하면 정년퇴직인데 버티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회사 상황이 이런데 어떡하겠어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활기에 찬 회사의 모습과 명덕, 일산지, 방어진, 일과 후 동료들과 한 잔의 술은 이후 먼 추억속의 기억으로 남겨둬야겠네요.”

그는 희망퇴직을 결정하고 난 현재도 마음이 먹먹하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다 나가고 지금 나 혼자 남았네요. 동료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는데,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하는가 봐요.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술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저는 초등학교 개근상을 받았는데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처음 입사할 때 목표가 정년퇴직이었는데 이루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회사생활이 끝나는 건 인생 제1장이 끝난다고 생각하려고요. 그래도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인생이 끝나는 일도 아니잖아요.”

오는 8월 퇴직 이후의 계획도 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창업을 할 예정인데, 자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꺼려했다.

◇사측은 안정적 일자리 제공 노측은 일감 확보 노력해야

하 기원은 지금 이 시간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주어진 일에 전념하는 선·후배 근로자들을 보면서 지금의 현대중공업 사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저 묵묵히 하루를 견뎌 나가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한 없는 안쓰러움에 가슴이 아프다. 그가 각각 노사에 바라는 점도 상세히 밝혔다.

“노조 지부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네요. 좁은 소견이지만 노동자들의 대부로, 조직의 수장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아래 참모들이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회사의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지부장이 일감 확보에 대해 회사 측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해결해야 함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라 봅니다. 훌륭한 노사 관계를 이루는 직장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라도 신뢰하고 일감을 주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일감확보에 대해서는 회사 측 경영자보다는 지부장이 우위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회사 측에도 묻고 싶습니다. 삼사십년이 넘은 다양한 근로자들이 재직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들에 대해서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잇는 현실을 대하고 나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요. 수십년간 묵묵히 회사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해 살아온 수많은 근로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지금이라도 수주 불안과 함께 불안에 쫓겨 길거리에 내몰리는 어깨 처진 후배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마련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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