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이 태왕에게 말했다.

“네, 명림답부의 가문인 명림원지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폐하가 병이 들었으니 문병을 가라고 해서 달포 전에 가야에서 출발해 국내성에 올라왔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와서 뵈오니 그렇게 건강하시던 폐하께서 이렇게 아프신 줄 몰랐습니다. 빨리 자리에서 쾌차하시길 비올 뿐입니다.”

태왕은 나지막하지만 무겁게 물었다.

“멀리서 문병을 와주니 고맙구나. 죽기 전에 네 얼굴을 보니 정말 행복하구나.”

거련 태자가 어린 시절 함께 동무했던 하지왕에게 의심스런 투로 다그치며 물었다.

“아바마마의 병은 일급기밀에 붙였다. 아바마마께서 병석에 누운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 왕실과 중신들밖에 없다. 그런데 명림원지는 왜와 붙은 먼 가야 땅에서 어떻게 아바마마가 병석에 누운 것을 알았는가?”

“명림원지는 저의 책사로 여기 고구려 출신의 사람으로 고구려 소식을 잘 아는데다 천문과 일력을 읽고 지리와 운수에 통달한 자라 그의 말을 믿고 올라왔습니다. 명림원지는 폐하께서 숙신 지방을 순수하다 병에 걸렸으니 급히 국내성으로 올라가 문병하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전에부터 폐하를 알현하고 싶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두말없이 허위단심 달려왔습니다.”

태왕이 거련 태자에게 말했다.

“아들아, 제갈공명은 자신의 죽을 날을 알았고, 역대 천문박사들은 별자리를 보고 왕의 생사길흉을 점쳤다. 우리 점성대의 천문박사도 어제 나에게 천구성이 토성을 침범했다고 하더구나. 명림원지가 명림답부의 핏줄이라면 내가 임종의 병석에 누웠있다는 정도의 알만할 것이다.”

태왕은 고리눈에 창대수염이 난 구투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하지왕과 함께 온 너는 누구인가?”

구투야가 태왕에게 다소 거친 말투로 말했다.

“저는 금관가야의 대장군 구발마의 아들인 구투야입니다. 지금은 하지왕의 호위무사로 있습니다.”

“구투야, 단순히 날 문병만 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래, 왕아. 우리 가문과 우리 가야의 원수를 갚으려고 나 구투야가 형가처럼 칼을 품고 왔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태왕과 거리는 불과 아홉 자, 태왕을 호위하는 무사도 없이 왕은 허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몸을 날려 독을 바른 사설도로 척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절호의 기회다.

하지왕은 책봉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구투야가 뚜벅 말했다.

“문병만 하러 온 건 아니올시다. 폐하께 꼭 한 가지 청을 드려려고 왔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고구려. 【S】kuru(구루), 구루는 옛날 파미르고원을 둘러싸고 있는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 강역을 말한다. 구루에서 구리, 구려, 고구리, 고리 등과 같은 말이 나왔다. 강상원 저, 조선고어 실담어 주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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