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낳지 않는 ‘집단자살사회’
결혼생활에는 양보와 희생이 필요
자신보다 사랑의 본질을 생각해야

▲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고등학교 후배가 대장암으로 죽었다. 53세. 졸업하고는 만나질 못했다. 부산에서 연극을 했다. 가난한 연극쟁이라서 그랬는지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곧 헤어졌다. 자식은 없다. 빈소는 형님 두 분과 같이 연극했던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부조 봉투에 이름을 적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줄이면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할 것이다. 어쩌다 태어나서 이제 늙고 병들어 죽는 일만 남았다. 나의 장례식장에는 내 한 점 혈육이라도 있어서 손님들을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 후배가 자식이 없는 것이 슬펐다.

2017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사상 첫 여성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화여대를 찾아 학생 150여명과 간담회를 했다. “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고요? 난 고등학교 때 이대에 오려고 아침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했어요. 이대에 와서 이제 미래가 열리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직장을 얻는다 해도 아이를 갖는 순간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하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이게 ‘유리천장’이구나 느끼고 있어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던 라가르드는 “그러지 말라, 여성은 더 독립적이고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출산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행사가 끝난 뒤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라가르드는 “결혼을 안 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고, 그럼 재정이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집단적 자살현상이 아니겠느냐?”며 이게 한국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 안전망 없이 여성들을 경쟁시키니 자연스럽게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가 되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위험이 큰 구조를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혼을 잘 하지 않는다. 결혼해도 자식을 갖지 않는다. 결혼과 자식으로 인해 맺어지는 관계의 무게 때문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눈치 봐야 할 사람이 줄어든다. 자식이 없으면 머리 숙여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능력있는 여자일수록 결혼을 안한다. 남편과 더불어 딸려오는 세트메뉴가 있다. 일명 ‘시-월드’ 시댁 식구다. 친인척으로부터 오는 관계의 무게감이 결혼의 부담감과 피로를 가중시킨다. 결혼이 두 사람만의 삶이 아닌 집단 구성원의 삶이 된다.

출산과 육아도 여성들에게는 공포다. 능력있는 여자는 결혼을 안하고 능력없는 여자는 결혼을 못한다. 남자들이 맞벌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둥이’란 말이 있다. 과거에는 세 자녀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두 자녀 이상이라고 한다. 이처럼 자식을 낳지 않는 사회는 ‘집단자살사회’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여성이 그토록 핍박받던 시절에도 우리 조상들은 자식을 낳고 길렀다. 지금이 우리민족에게는 가장 풍요로운 시대다.

과거 가장 많이 팔렸던 차는 아반테나 소나타였다. 지금은 그랜저다. 그랜저가 처음 나왔을 때는 사장님들이 타는 차였다. 더 잘 먹고 더 큰 차를 타게 되었지만 자식을 갖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있다. 이를 라가르드는 사회 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남여 모두 직업이나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현모양처를 꿈꾸었다. 그 어떤 직업보다 위대했다. 서로 사랑하면 떨어지기 싫어서 결혼을 했고 같이 살면 사랑의 결과로 아기가 태어났다. 지금은 물질만능과 개인주의 때문인지 사랑을 할 기회가 줄어 들었다. 부모 세대는 가난해도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그 다음에 살아갈 걱정을 했다. 지금은 순서가 바뀌었다. 걱정부터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는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보다 사랑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과 사랑의 본성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해결책이 없다. 남북한 간에도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분단과 갈등을 넘어 사랑과 통일의 시대가 오고 있다. 남남북녀라는 말도 있다. 남한 총각과 북한 처녀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기심만이 팽배하고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회는 집단자살사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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