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부모따라 삶의 기술 배우는 아기처럼
집단 규칙등 따라야 구성원 인정받아
소수의견 고집하면 내몰릴 위험 처해
갈등없는 사회에선 대세 따르면 유리
심약한 인간의 동조행동 비극 초래도
             
포털 언론기사 댓글란은 현대판 광장
정보 홍수 속에 다수 의견 궁금하지만
극단적 주장·댓글 조작으로 여론호도
공정한 여론 형성 위한 제도마련 절실

중학교 시절 국어 수업시간. 호랑이 선생님이 들어오자 학생들은 잡담을 멈추었다. 숙제검사를 하겠다고 하니 한 학생이 두리번거리며 대답한다. “숙제를 내주신 적 없는데요.” 잠시 후 옆의 학생이 이어받아 말한다. “숙제 없었는데, 얘들아 그렇지 않니?” 단박에 분위기를 눈치 챈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젠 선생님도 확신이 흔들리는지 잠시 고민하고 둘러보다가 나에게 눈을 맞추신다. “준호야, 내가 숙제 낸 것 맞지?” 운명의 순간. 난 친구들의 바람을 따르려는 본능과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판단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 숙제가 있다고 대답해버렸다. 탄식과 원망의 눈초리가 등에 따갑게 꽂혔다. 다행히 따돌림은 없었지만 집단의 압력을 거부한 대가는 컸다.

우리는 모두 ‘따라쟁이’로 태어났다. 생존하려면 주위 사람을 따라 해야 한다. 아기들은 부모를 따라하면서 삶의 기술을 배운다. 집단에 소속되면 집단의 규칙과 방침을 따라야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명시된 규칙이 아닌 의견과 판단도 다수를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소수 의견을 고집하다가는 집단에서 내몰릴 위험이 있다. 옛날에는 추방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기도 하였다. 갈등과 변화가 별로 없는 사회에서는 따라 하기, 즉 ‘동조행동’이 유리하다. 어떤 의견이 옳은지 수고롭게 고민할 필요 없이 대세에 따르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동조행동은 선전과 압력에 취약해서 극단에 흐르기 쉽고, 때론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인종차별을 주장하는 나치즘이 독일 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나중에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과정은 지금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유럽의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도피한 뒤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연구하였는데, 1960년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법정에 세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서 직접 재판을 지켜보았다. 유대인을 폴란드 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의 최고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끝까지 주장하였다. 아이히만은 결국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에서 악의 본성을 밝히려는 주위의 기대와 달리, 한나 아렌트는 그가 자신의 행위를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었을 뿐이라며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우리 가슴에 결코 평범하지 않게 뜨끔거리며 다가온다. 행위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다가는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으니까.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떨까? 생각을 간섭받지 않고 언론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소신껏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욕망이 발목을 잡는다. 광고가 온갖 편리함과 쾌락을 남들처럼 누리라고 충동하니 우리는 쉽게 유행에 휩쓸린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바쁘게 생활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 더 나은 생활인지, 자신의 판단으로 이런 삶을 살기로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일하고 쉬고 즐기느라 바빠서 조용히 돌아볼 시간이 없다.

바쁜 가운데 짬을 내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니 뉴스가 넘쳐나고 의견은 대립한다. 무슨 의견이 다수인지 궁금한데 이번에는 드루킹과 일부 사람들이 댓글을 조작했다고 한다. 간혹 댓글 조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댓글에 자주 나오는 극단적인 주장과 욕설은 거부감만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댓글 조작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표현을 절제하면서도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은밀히 이루어진다. 국가 기관의 댓글 조작을 소재로 한 장강명의 장편소설 <댓글부대>는 댓글 작업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인터넷 싸움을 팩트와 논리보다는 정력과 멘탈로 하니까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네이버의 언론 기사 댓글란은 현대판 광장이다. 누구나 와서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는 잘 활용하면 손쉬운 의견 통로가 되지만 현재처럼 운영된다면 치명적인 약점이 숨어있다. 이 커다란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차서 일사불란한 주장을 한다. 당연히 마음이 끌린다. 다른 의견이 떠올라도 괜히 내놨다가 욕먹을까 두렵다. 유동 인구가 많으니 광장 주변에 늘어선 상점들도 성업 중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손오공의 분신술로 수만 명을 복제해서 광장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한 이 분신술을 매크로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문제는 이렇게 심하게 여론을 왜곡해도 현행법으로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온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쳤는데도 기껏해야 네이버측의 댓글 순위 선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안타까운 메아리로 들린다.

인터넷 포털이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도록 너른 광장을 펼쳐 놓았는데, 소수 집단이 부정한 방법으로 광장을 휘저어서는 곤란하다. 공정한 여론 형성을 위해 인터넷 생태계에 걸맞은 새로운 규칙이 절실하다.

안준호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