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편 (43)민주신보 울산특집

▲ 부산에서 발간되는 민주신보는 1955년 10월 울산지사 설립 특집판으로 울산의 경제 문화 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취재 후 보도를 해 놓아 당시 울산 현황을 잘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해방후 부산서 발행되던 신문으로
초기엔 민주중보로 발간
1950년 2월부터 민주신보로 개명
경영악화 타개책으로 울산지사 낸듯

울산 각계인사 참여한 좌담회와
당시 울산 대표산업이었던
장생포 포경·어획량등 기사로 소개
세무행정·밀주·교육 문제도 담아

해방 직후 부산일보, 국제신문과 함께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민주신보의 울산 특집판이 최근 발견되어 울산 언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신보는 1955년 10월14일 울산지사 창립 기념으로 전체 4면 중 3면에 울산을 소개하고 있다. 이 속에는 울산의 행정, 산업, 교육을 자세히 기록해 놓아 당시 울산현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해방 전후 동아일보 등 중앙지가 울산 인물을 소개하는 형식의 내용을 담은 ‘울산판’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기자가 직접 울산 산업 전반에 대한 현황을 취재해 문제점을 분석한 후 기사로 실었던 신문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내용은 당시 울산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민주신보는 해방 후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신문으로 초기는 민주중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1950년 2월1일부터 민주신보로 이름을 바꾸어 발행했다. 사장은 김예준으로, 김 사장은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활동한 경제인으로 동래화학공업과 부산무역사장을 역임했다.

이 신문은 민주신보로 이름을 바꿀 때만 해도 3만부를 발행 부산, 국제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신문이었지만 이후 경영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지사를 낸 것도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추정된다.

울산지사장은 최두칠로 당시 그는 울산 시계탑 사거리 인근에서 책과 문구를 파는 태화상회를 운영하면서 울산의 유지로 활동했다.

기자는 당시 울산에서 문학 활동을 열심히 펼쳤던 이용우씨로 특집판 기사 전체를 이 기자 혼자 썼다. 이 기자는 나중에 부산일보와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문에는 울산의 각계 인사들을 초빙해 울산 현황에 대한 좌담회도 싣고 있는데 이용우 기자가 좌담회 사회를 보았고 기록은 울산의 김선홍 기자와 언양지국의 박이현 기자가 했다.

울산의 산업을 보면 ‘영남의 雄郡 蔚山이란 이런 곳이다’는 제목의 기사에 ‘연 2억 원의 고기잡이’라는 소제목으로 ‘장생포 포경은 전국적’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때만 해도 울산은 공업도시가 되기 전이라 공장이라고는 거의 없어 울산을 대표하는 산업이 고래잡이와 농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기사에 나타난 당시 울산 산업의 근간인 농업을 보면 벼 24만5000석, 보리 13만3000석, 콩 8500석, 생강 5000관, 배 15만관, 복숭아 1만관으로 나타나 농산물 역시 내세울 것이 못됨을 알 수 있다.

대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장생포항의 포경을 필두로 방어진을 위시해 정자, 서생 어항에서 갈치, 멸치, 고래, 고등어, 대구가 잡혀 연 2억 원의 어획고를 올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최근 들어 어선의 잡는 어획량보다 양식을 통한 생선 양이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면 어업 역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다른 산업은 더 보잘 것 없다. 신문은 ‘그동안 농소면 달천광산의 철과 하상면 연암탄광의 갈탄 생산이 군민생활에 도움이 되어왔지만 현재는 발굴을 않고 있어 유감’이라면서 ‘공업계는 더욱 한심하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기껏 제 모양을 갖춘 것이 양조업(특히 탁주)이나 단지 하나밖에 없던 청주 양조장(산천학 양조장)과 방어진 주정공장의 면허 취소는 울산 발전에 지장과 유감이 될 뿐 아니라 지방 사업가들의 대 분발을 부르짖게 하고 있어 조속 복구가 요망되며 고무신과 성냥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보잘 것 없는 형편인데 방어진 철공소는 시설만은 국내에서 유수하다고 하나 자금난과 자재난으로 경영이 급급한 실정으로 이의 부흥과 발전이 곧 이 나라 조선계의 자랑인 동시에 수산계에 빛을 가져 올 것이기 때문에 군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바사바란 말썽 없도록’이라는 제목의 세무 행정에 대해서도 비판이 만만찮다.

‘직접세 연 3100만 원, 간접세 연 1500만 원과 토지 수득세 9만 5000가마니를 부과 징수하는 울산세무서는 일도 많고 바빠도 보인다. 울산의 세무행정은 금태안경을 끼고 언제나 웃어 보이는 눈을 가져 서울양반처럼 보이는 崔모세무서장의 책상머리에 붙어 있는 초인종의 단추에 의해 처리된다. 과세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모 서장. 그러나 지금까지 과세가 공정했던 가요? 징수 경진회에서 일등을 한 것을 보면 과세가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왕왕 들리는 여론을 보면 과세가 불공정해 세금을 바치지 못하겠다는 사람과 사바사바 하는 사람은 헐하게 메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바사바한 사람의 세액까지 내어야 해 골탕을 먹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불평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데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나무라고 있다.

밀주취재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다.

‘밀주취재 역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영리를 일삼는 규모가 큰 업자는 오라가라는 호출이 적은 반면 손자를 군에 보낸 할아버지가 보리타작 후 한 잔의 술을 마시기 위해 겨우 조금 담은 평민들에 대해서는 오라가라하니 비록 법이라 할망정 집에서 마시기 위해 담은 할아버지는 눈을 감아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소규모 밀주를 이렇게 엄하게 단속하는 것은 대규모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여론이 있다. 지난 8월15일에는 울산시장에서 팔리는 나이론 제품의 옷에 대해 매점 당 500환 정도의 물품세를 붙여 울산의 옷들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산에는 나이론 옷이 과세가 되지 않았는데 울산만 새로운 법을 적용해 세금을 붙여 의류 한 점에 5백 환의 차이가 나다보니 소비자들이 얼마의 여비를 들이지 않으면 갈수 있는 부산으로 모두가 사 입는다고 한다. 부산에서 과세를 하지 않았다고 울산에서 과세를 해서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울산상인과 소비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런 과세는 옳지 못하다.’

세무서의 인허가 문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고 있다.

‘인허가권은 세무행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허가증을 가진 사람은 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보다 사업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울산세무서가 이를 등한시 하는 것 같다. 인허가를 가진 업자들은 이를 갖기 위해 많은 경비를 들였다. 따라서 세무서는 인허가장의 가치를 살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것은 울산세무서가 오로지 세금 거두기에만 급급했지 법의 신성과 관의 위신 그리고 사회질서와 개인의 이해를 전혀 돌보지 않는데서 발생하는 일이다. 세금의 문제는 유독 주류 판매와 요식업에서 많이 일어나니 법을 짓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과도기가 되어 업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구실을 들어 책무에 태만하지 말고 법의 정신을 살리기를 바란다.’

교육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말썽이 많다. 이 신문이 발행된 1955년 10월 현재 울산에는 초등학교 46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가 5개교가 있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월사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당시 울산 관내 초등학교는 월사금으로 도심 학교 학생들이 180원, 농어촌 어린이들이 100원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농어촌의 경우 학부모들의 수입에 비해 학비가 너무 비싸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학교가 이들 학생들에게 수업을 시키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심지어는 학기고사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서 질타한다.

기자는 “교육법이 이렇게 되어 있다면 고쳐야 하고 학생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는 이런 교육자세는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교육용품의 구매가 공정하지 못한 것도 나무라고 있다. “교육용품의 구매를 둘러싸고 학교마다 잡음이 그치지 않는데 교육자들이 양심을 버리고 학생들을 인질삼아 교육보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동을 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겨나고 있다”고 질타한다.

시기적으로 이 신문이 발행된 때가 지금부터 60여년이 넘는다. 울산은 공업도시가 된 후 학교가 많아지고 세수가 엄청 늘어나면서 교육 사회 문화 등 다 방면에 변화가 많았다. 특히 시민들의 생활이 당시 보다 훨씬 윤택해지고 편리해졌다.

그런데도 이 신문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이 지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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