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울산은 10개가 넘는 원전에 둘러싸여 있는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지역이다. 원전은 저렴한 생산 비용과 청정 에너지원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형 사고의 우려도 존재하는 양날의 칼로,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방사능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울산시와 각 구·군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방사능방재 훈련을 실시해 대피 경로나 사고 후 대처 방안을 점검한다.

훈련은 매년 진화하고 있다. 육로 일변도였던 대피 경로는 선박 및 항공으로 다변화되고, 구호소 운영도 이재민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첨단화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노력에 비해 시민의식은 제자리인듯 하다. 대응체계를 구축함에 있어 관이 훈련을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구조가 불가피하다. 지자체가 매뉴얼을 수립하고 훈련을 하더라도 시민참여가 부족하다면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원전사고 발생 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원전 5km 이내 예방적 보호조치구역 주민들조차도 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관 주도의 동원형 훈련이라는 특성상 고령자를 중심으로 늘 참여하는 주민만 참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지난 16일 UNIST 체육관에서 실시됐던 방사능재난 대비 주민보호훈련에서도 이런 점은 드러났다. 지난해 열린 훈련 장면을 촬영한 사진·동영상 자료를 시청하는데 현재 훈련에 참여한 주민들의 얼굴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원전 최인근 주민들의 관심이 이 정도인데 더 먼 곳에 사는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원전사고 발생 시 그 여파가 80㎞에 달한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울산시민 모두가 훈련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울산 대부분 지역이 고리·신고리원전은 물론 경주 월성원전의 30㎞ 이내에 위치해 있어 시민 전체가 방사능 대피구역 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자체들은 비상 상황 시 발생할 극심한 혼잡을 예방해 신속한 대피를 진행하고 대피자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훈련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거주지 인근에 집결지를 마련한 뒤 임시 생활을 위한 구호소까지 단체 이동을 지원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야 할 집결지가 어디인지 아는 시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자체는 현재의 대피시스템을 통해 개인 차량 이용을 최소화, 도로 혼잡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집결지와 구호소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민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대피에 나서게 되고 도로는 마비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확한 대피 지침을 사전에 숙지하고 개인 차량의 이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주 열린 방사능재난 대비 주민보호훈련에 시민체험단이 참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시민체험단은 대부분 원전에서 20㎞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여해 유사시 대처 방법을 배우고 이를 가정에서 재교육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10명에 불과했다. 훈련을 지켜본 평가단도 훈련 확대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평가단 관계자는 훈련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잘 진행되고 있다고 호평하면서도, 특정 지역 주민들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시민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이 확대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훈련의 목적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큰 혼란없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참여자가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훈련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원전 사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문제지만,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는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더 큰 문제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