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정복자 태왕이 무엇 때문에 적장을 죽인 것을 사과하고 그 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인가. 전쟁터에서 사로잡은 적장은 목을 베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궁녀로 삼고 그 아들은 질자로 잡아 말구종이나 시키는 일은 정복왕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광개토태왕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살인에 대한 참회를 했던 것이다.

“꺽감아, 네 어미 뱃속에 있는 너를 죽이려고 한 것도 용서해다오. 모두 다 내가 잘못했다. 난 그때 제 정신이 아니었어.”

하지왕이 마음을 억누르며 태왕에게 겸손하게 말했다.

“아바마마, 전 오랜 전에 이미 폐하를 용서하고 제 아버지로 모셨습니다. 제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대가야 백성들도 폐하와 왕후마마를 어버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제가 태왕의 은택을 입었지 용서를 바랄 입장은 아니옵니다. 그런 말씀은 황송하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아들아. 네 말을 들으니 편하게 내가 편하게 눈을 감겠다.”

태왕은 왕실과 중신, 하지왕과 구투야에게 말했다.

“짐은 고구려 조정에게 마지막 나의 어명을 내리노라. 보위를 잃은 꺽감을 다시 대가야의 왕으로 책봉하노라. 현재 박지가 세운 구야는 더 이상 대가야의 왕이 아니다. 알겠는가?”

“예.”

중신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왕은 이제 마지막 힘을 내어 말했다.

“난 평생을 말 위에서 살았다. 말밑에서는 수많은 왕과 장수들, 백성들이 말발굽 아래 짓밟혀 죽어갔다. 나는 그것의 응보를 받고 이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것이다. 난 한 생애에 지도상에 몇 뼘의 땅을 넓혔을 뿐 마음은 내가 죽인 자들로 인해 하루도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부처님의 말씀대로 방촌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어가고 있다. 내가 이 임종의 자리에서 깨닫는 것은 누구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뺏고자 일으키는 전쟁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탐욕이고 가장 큰 분노이고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전쟁을 빌미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러므로 거련아, 악역은 아비만으로 족하다. 아비의 전철을 밟지 말고 부처님의 자비와 화평을 베풀며 살아라, 알겠느냐?”

거련 태자가 말했다.

“네, 아바마마.”

“좋구나. 정말 좋구나. 전륜성왕과 같이 사해에 자비를 베푸는 위대한 왕이 되어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거련 태자를 도와 고구려가 사해에 덕과 자비를 끼치는 나라로 만들도록 보필하도록 하라.”

“예.”

광개토태왕은 말을 마치고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추었다. 삼매에 든 고승처럼 침상에 앉은 채로 좌정입적한 것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삼매. 【S】samadhi(사마디), 【E】the tranquil state of deep meditation. 깊은 명상으로 고요한 마음상태.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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