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케미칼 사고로 29명 피해

긴박상황에도 신속대피 어려워

현실적 대응 매뉴얼 필요성 고조

▲ 지난 18일 울산시 남구 한화케미칼 2공장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염소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창균기자 photo@ksilbo.co.kr
염소가스 누출로 최소 29명의 환자가 발생한 한화케미칼 울산2공장 사고(본보 5월18일자 7면 보도)를 계기로 화학물질 누출사고시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의 신속한 대피가 가능한 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리적으로 신속한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재 매뉴얼을 현실에 맞도록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 남부소방서와 남구청, 한화케미칼 등에 따르면 염소가스 누출사고는 지난 17일 오전 9시58분 발생했다. 1분 뒤 호흡곤란,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는 한화케미칼 인근 근로자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당시 순간 풍속이 최대 초속 6m를 넘는 강한 바람이 불면서 사고 발생 1분 만에 인근 업체 근로자에게서 염소가스 흡입 증세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특수화학구조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0시13분, 염소가스 누출차단 조치가 이뤄진 시각은 10시45분이었고, 이 때까지 인근 근로자들은 바람을 타고 확산되는 염소가스에 그대로 노출돼 최소 29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현재 매뉴얼대로라면 사고 당시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주체는 남구청이다. 사고 발생 즉시 남구청은 연락관 2명을 약 3.9㎞ 떨어진 현장으로 급파했고, 재난대책본부까지 꾸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대피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었다면 이같은 시스템으론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긴급차량을 타고 출동하는 소방의 경우 사이렌을 울리고 주위 운전자들의 양보 등을 통해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지만 연락관의 경우 소방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고 현장과 약 1.3㎞ 떨어져 신속한 출동이 가능했던 야음장생포동 행정복지센터의 경우 대피 등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데다 전문성도 부족해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근로자는 “염소가스 누출차단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대피해야 한다거나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말이 없었다”며 “만약 누출량이 많았거나 불산 등과 같은 독성 물질이었다면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남구청은 현재 화학물질 사고시 주민 대피 계획이 포함되는 ‘화학물질 안전사고 시행계획 수립 학술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남부소방서, 한국가스안전공사, 낙동강유역환경청 등과 사고 현장 합동감식을 벌였다.

이들 기관은 가스가 누출된 지름 1인치, 길이 3m 규격의 이송배관 균열 부위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단순 노후화에 따른 균열인지, 설비 결함이나 작업 과정에 과실이 없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근로자 안전교육과 작업절차 준수 여부 등도 점검했다.

감식 결과가 나오는 대로 회사 관계자를 소환해 회사 측의 과실이나 책임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왕수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