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부부관계도 새롭게 변해가지만
부부는 가족역사 함께한 동반자

▲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유난히 맑고 화창한 봄날 바닷가 야외결혼식장,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사귐을 이어가게 되었으며,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은 무엇인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살아보고 싶은 삶은 무엇인지를 고백하는 자리. 주례사 없이 신랑신부가 온전히 준비하고 주관하는 결혼식. 신랑신부 양가어른들은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하객들마저 축제로 즐기는 자리. 새롭고 간소하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결혼이 신랑신부의 선택과 책임으로 이루어지는 부부의 인연을 맺는 자리이며, 그 의미와 형태가 새로이 다양하게 변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계청(2017) 자료에 의하면 초혼 부부 중 남자 연상부부는 67.2%, 여자 연상부부는 16.9%, 동갑 부부는 15.9%를 차지했다. 여자 연상커플의 비율 증가와 더불어 과거결혼경력이 있는 재혼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마음이 맞고 조건이 맞으면 재혼자라도 상관이 없다는 거며, 실제 남성 재혼자와 여성 초혼자의 비율뿐만 아니라 여성 재혼자와 남성 초혼자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한편으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멋진 솔로로 살아갈 것을 축하하는 독특한 의식도 생기고 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하거나, 아이를 낳고 살거나 하는 자유로운 삶의 형태도 늘어가는 추세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이해심이 많고 잘 챙겨주는 능력있는 연상 여성에 대한 호감과, 책임감과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남성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누나가 예뻐야 한다는 논리로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회문화가 남성에게는 과도한 부담으로, 여성에게는 남성위주의 가족문화, 출산·경력단절 등의 이유로 기피하고 싶어 하는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시대, 다시금 정립되는 남녀역할과 결혼, 부부관계의 정립이 필요해졌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있었던 보수적인 영국왕실의 해리 왕자와 미국계 혼혈 30대 이혼녀의 결혼식도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왕실이 전례가 없는 결혼식으로 왕자에게 신부가 하던 ‘복종하겠다’(obey)는 서약 장면이 사라지고, 신부 마클이 예배당에 혼자 들어서 누구의 에스코트도 받지 않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신랑 해리 왕자에게 신부 마클의 손을 잡고 건네주는 절차도 없앴다. 언론들은 세살 연상에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는 흑백 혼혈인 할리우드 영화배우를 새 식구로 맞이하며, 백인·남성우위 관행을 깨고, 통합되고 열린 영국의 이미지를 되살리고 있다고 전한다.

50대! 친구들을 만나면 주된 관심사가 자녀들의 독립과 결혼문제로 이어진다. 정착 자녀들이 결혼 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에 대한 의사가 있어도 너무 늦거나 때로는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몇몇 친구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는 소박한 소망이 있다고 한다. 자녀들이 성장하면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할머니가 되어가던 그 과정이, 아무나에게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결혼하고 부부로 살아가며, 자녀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단다. 아들만 키운 친구는 며느리가 연상 여성이면 더 잘 챙겨줄 것 같단다. 심지어 며느리가 능력있으면 아들이 휴직과 자녀양육의 전업주부로 지내는 것도 좋다고 한다. 결혼과 남녀역할, 그리고 부부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27년 부부로 살아온 시간을 반추해본다. 부부로 출발해서 자녀를 낳고 기르고, 자녀들이 떠나며 다시 부부로 남겨지고 있다. 부부로 살아오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영화 ‘The Story Of Us, 1999’는 ‘부부가 함께 기록해온 역사가 가족이다’고 말한다. “이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든 역사예요. 나쁜 거 보다는 좋은 게 많아요. 당신은 좋은 친구야. 좋은 친구 찾는 게 얼마나 힘든데…” 권태로운 부부생활까지 사랑의 역사라는 걸 깨닫게 된 아내(케이트)가 울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요즘 권태로운가?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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