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하지만 요즘 5월은 행사의 여왕인 것 같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도 더해진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계절의 여왕을 느낄 새도 없이 5월이 끝나고 있다.

해마다 말 많은 스승의 날! 올해는 청와대 게시판에 스승의 날 폐지 청원이 올라왔다. 1만3148명이 참여한 이 청원의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교사 패싱’이, 학교에서는 나날이 늘어나는 ‘교권침해’에서 항상 교사에게만 책임을 묻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스승의 날 포상과 행사를 통한 교사 챙김이 아닌 교사가 진정 교육 주체가 되고 싶다는 오히려 교사로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단에 서고 싶다는 요구였다.

처음 이 청원에서 스승의 날 폐지만 들었을 때는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전체 맥락에서 보니 단순히 스승의 날 폐지를 주장한 글이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스승의 날’ 폐지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우리의 전통 의식인 ‘제사’를 반대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제사의 기본 정신은 추원보본(追遠報本)이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 제사가 그 정신보다는 과도한 형식에 치우치게 되면서 불만이 많아졌다. 스승의 날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보다는 5월15일 하루의 행사라는 과도한 형식이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스승의 날은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 기본 정신은 스승의 날 정의에 해당하는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날’일 것이다. 지금의 스승의 날은 이 기본 정신에서 너무 멀리와 버린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이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스승에 대한 공경보다는 그저 직업인으로서 교사인 것 같다. 학생들에게 규칙과 예의를 지킬 것을 강요했던 숱한 잔소리에 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우리에게 예의를 강조하시면서 본인은 왜 예의가 없으신지!’라는 응답을 들어야만 했다. 이것은 나의 행동을 수정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는 학생들에게 쓴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과연 이것이 교육적으로 현명한 선택일까?

하지만 아직 학교는 스승의 날이 있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많은 곳이다. 나는 2년 만에 5월을 맞아 석사과정 지도 선생님을 만나 뵈러 부산까지 다녀왔었다.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신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강단에 서던 선생님의 정정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때 그 가르침의 의미를 몰랐던 철없던 시절을 탓하며 울산으로 올라왔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스승의 날을 맞아 담임에 대한 고마움을 롤링페이퍼에 깨알같이 써서 파티를 열어주었다. 학생회에서 건네준 장미 한 송이는 나의 교직에 대한 일편단심의 징표처럼 내 책상 위에서 활짝 피었다. 이 모든 것이 스승의 날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한유(韓愈)의 사설(師說) 한 구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師者는 所以傳道授業解惑也)” 나는 스승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본다.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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