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안
외국투자자 엘리엇의 공격에 발목
정부의 기업보호 정책이 아쉬워

▲ 김창식 경제부장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안이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에 발목이 잡혔다.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규제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고 마련한 지배구조 개편안이 엘리엇의 공격에 백기를 든 것이다. 현대모비스 지분 1%대를 가진 엘리엇이 계열사 지분을 포함해 30%의 우호지분을 가진 한국의 국가대표 기업 현대차그룹의 계획을 저지시킨 사건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현대모비스의 사업 중 모듈사업 부문과 AS부품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합병한다는 내용을 담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사업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루기 위한 사업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나온 지배구조 재편안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복잡한 그룹의 4개순환 출자고리를 완전히 해소하고, ‘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수직적 출자구조를 확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배구조 재편안의 운명을 가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주주총회(29일) 1주일 여를 앞둔 지난 21일 전격 철회를 발표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잇단 반대 의견으로 분할·합병안 통과여부가 불확실하자 주총 전에 스스로 패를 내리는 고육지책이던 것이다.

공격의 배후에는 ‘악의 힘’으로 악명높은 엘리엇이 있었다. 엘리엇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하는 행동주의 펀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발표가 나자 즉각 삼성물산 지분율(7.12%)을 끌어 올리며 제3대 주주가 된 후 주식가치가 과소평가됐다며 반대했다. 또 합병안 통과이후에는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720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중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오자 주주환원 강화, 경영구조 해결 미흡 등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외국계 자문사와도 서로 힙을 합쳤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 루이스와 ISS가 연이어 반대를 권고하고, 국내 자문사들까지 가세하며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지지 아래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 “엘리엇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주주 설득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반격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국민연금이 결정권을 민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넘기면서 추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현대차그룹은 주주와 시장 소통이 부족했다면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해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도 하차한 아픔이 아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주주와 정부(순환출자 해소)를 모두 만족시킬 만한 재편안 마련이 쉽지않아 보인다. 분할·합병 비율 조정, 추가적인 주주환원 정책 등 더 많은 것을 내줘야할 상황에 처한 셈이다. G2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점유율 감소로 실적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고민이 커지게 됐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외국계 투자자들은 언제든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또 관철되지 않을 경우 국내 기업을 공격해 손쉽게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다. 국내 25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우호 지분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하면 40%도 안 안된다는 통계이고 보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정부가 우리 기업들의 방어막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 일변도로는 어떤 기업도 생존하기 어렵고, 어떤 기업도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에서 살아나기 어렵다. 정부도 뼈저린 교훈을 느꼈을 것이다. 재벌개혁도 중요하지만, 기업도 살려내야 한다.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계로 넘어간다면 제2, 제3의 GM사태는 불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김창식 경제부장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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