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몇 달 전 대학동기의 부친상이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한 터라 다른 친구로부터 부친상 소식을 듣고 그날 밤 함께 문상을 갔다. 대학 졸업 후 금융권에서 소위 잘나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만난 그 친구의 모습은 길에서 만나면 모르고 스쳐지나갈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스무 살 때 그는 활달한 성격과 건장한 체격에 운동에도 뛰어나 체육대회 때는 펄펄 날아다니던 친구였다.

어릴 때 친구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만났지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94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선친은 당신이 반신불수나 치매가 아닌 이상 절대 요양병원에는 보내지 말아달라고 막내인 그에게 부탁하셨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지난 6년 여 동안 토·일요일을 다른 이의 주말처럼 지내 본 적이 없었다. 선친의 문안을 가거나 기력이 부족한 선친이 계절마다 가고 싶다는 곳을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휠체어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아버지와의 여행’을 한 것이다. 나중에는 자신의 일도 그만두고 아버지의 간병에 오롯이 시간을 보냈다. 간병 당시 그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건강은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듯이 신부전 외에도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어 하루에 먹는 치료약만 10여알이 되었다.

문상을 온 선친의 지인들이 “자네가 욕 마이 봤다. 요새 자네 같은 자식이 어데 있노. 그만큼 했으니 덜 섭섭할 끼다”라고 하는 칭찬에 그는 “부족한 자식을 자식노릇 할 ‘팔자’로 여겨 주신 것에 오히려 아버지께 제가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변수발을 할 때는 미안해 하실까봐 “아부지, 아부지 똥 냄새는 하나도 안 싫다”고 말했다며 그게 진심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 전 그는 선친과 함께 보낸 6년 여 시간을 글로 모아 선친의 영전에 헌정하는 책을 출간했다. 선친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을 보며 지금의 우리들 모습을 반추해 보게 된다. 시대가 변한만큼 부모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안부는 전화로 대신하고 그나마 전화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일도 번거로운 하나의 통과의례 수준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면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집착하고 자식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부모에게 영원히 희생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희생은 우리를 키워준 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제는 우리들이 부모님의 길을 가고 있다. 출근 길, 퇴근 길에 드리는 안부 전화 한통이 부모님께는 하루의 안녕과 활력이 될 수 있다. 5월을 마무리하며 전화로라도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아뢰어 허락을 받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린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이 살아계심을 감사하고 부모님과 우리에게 남겨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도록 하자.

문상 갔던 친구들에게 그가 보낸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글이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아부지, 내가 아부지 사랑하는 거 아나 모리나?”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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