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판단으로 미래 예측은 착각

지나친 비관도 낙관도 무의미

섣부른 예측보다 열린미래가 낫다

▲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말부터 논의되고 올해 초 발의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연이 된 한분이 있다. 필자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그분은 당시 필자의 눈에 매우 독특한 사람이었다. 먼저, 프로젝트 사안에 너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다음 미팅을 정할때에도 날짜를 픽스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어찌 저토록 편하게 생각할 수 있나, 프로젝트를 필자에게 방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초기에 보았던 그분의 남다른 모습만큼이나 일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많은 견해차가 발생했다. 이를테면 프로세스상 충분한 자료분석을 통해 늘 다음 상황을 고려하고, 각 단계별 결과를 예측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필자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그분의 스타일은 자료수집과 분석을 통한 미래예측을 지양하고 즉각적 현상파악에 바탕한 사안 판단으로 일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수십년 습관화된 필자의 상식에 맞지 않음은 물론 상상조차 어려운 논리다. 한 예로 미래의 운송수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치자. 이 경우 필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교통수단인 마차, 차, 배, 비행기의 발전사를 조사·분석해 현재 운송수단의 문제점을 찾아낸 다음 그 해결책으로 충분히 검증된 미래기술 로드맵과 예측된 트렌드 좌표에 맞추어 해당 미래시점의 사용자에게 필요한 운송수단을 디자인하여 제시할 것이다.

그분의 방식은 기존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접 수행한 현상파악에 중심을 둔다. 특히 바로 오늘, 당일의 운송수단 운행상황에서 사안이슈를 획득, 이에 바탕한 미래 운송수단을 제시하는데, 특이한 것은 미래기술 로드맵이나 트렌드예측자료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검증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결국 당사자가 아닌 타자의 시각과 미래예측을 종합하여 평균화한 ‘죽은 데이터’이기때문이란다. 그런 ‘죽은 데이터’에 기반하여 만들어 낸 미래예측은 헛된 시나리오 즉 망상이나 허상일 뿐이라고 한다. 그분의 그런 태도에서 뭐랄까 지식의 축적에 의한 인류문명발전원리가 부정당하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필자가 경악할 수준의 이런 의견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성이나 권위, 때로는 나이까지 내세워 필자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였지만 늘 허사였다. 그 어떤 경우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그분의 성격 탓에, 일은 필자의 의도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프로젝트를 보며, 필자는 이제 결과물에 대해 비관도 낙관도 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완료시점을 대하는 그 분의 태도, 섣부른 결과예측을 철저히 부정하는 의견때문에 필자는 프로젝트 진행이 너무 너무 곤혹스럽다. 몇번씩이나 프로젝트를 포기할까 마음먹기도 했다.

반전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깨닫는 것은 필자가 미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 미래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숙고해보니 아무리 검증된 데이터와 자료에 기반한다고 해도 미리 결말을 정해놓고 미래예측이라 쓰는 것은 넌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도 충분하다. 현재의 우리 모습이 과연 50년전 1970년대에 과학자, 공학자, 미래학자들이 예측했던 미래와 들어맞냐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딴판이기 때문이다. 매끼니 식사없이 영양소 100% 알약 하나로 생활하기는커녕 점점 더많은 다양한 요리법과 음식가짓수에 파묻힌 오늘이 아닌가? 화석연료자원 고갈의 대안, 미래에너지라 불렸던 원자력발전이 오늘날 이토록 다양한 이슈에 갇혀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당시에 누구도 하지 못했다. ‘신뢰(?)’라고 믿는 통찰력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 지금 아무리 상상해봤자 그 것은 진짜 미래가 아닌 망상일 뿐이라는 그분의 의견이 진심 맞는 것 같다.

우리의 일상과 연구, 업무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각자의 ‘계획’이나 연구자의 ‘책임’, 관리자의 ‘의무’라는 미명하에 미래를 현재 내 역량의 틀안에 가두어 넣는 것은 아닌가? 세상 누구든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발전하는 이치에 산다. 그렇다면 ‘오늘’보다 부족한 ‘과거데이터’에 바탕해서 ‘내일’보다 부족한 ‘오늘의 통찰력’으로 예측하는 ‘미래의 모습’은 결국 진짜 역량에 한참 모자란 결과다.

못난 망상으로부터 미래를 열어 놓은 필요가 있다.우리가 일상을 보낼때, 프로젝트를 만들때, 업무를 수행할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때, 예측이라 쓰고 미래라고 읽는 못난 이 습관 때문에 이뤄지지도 않는 망상만 자꾸 만들어내며 시간과 재화를 낭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결말은 필자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제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하지 않다. 오늘의 모습속에 나의 노력하기에 답이 있지 건방지게 함부로 정해놓은 망상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망칠지도 어쩌면 정말 근사할지도 모르는 결말이지만 그게 미래다.

우리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은 나중에 무엇이 되든, 섣부른 예측이나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편협한 미래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는 것. 인생인연, 스승같은 그분 SY에게 감사드린다. 미래는 열린 것이다. 건방진 망상말고 오늘에 충실하면 다 된다. 일상과 업무는 물론 인간관계와 사랑부터 지구와 우주의 평화까지도.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