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1863년 아일랜드 지질학자 킹(William King)은 독일 네안데르탈(neanderthal)계곡에서 발견된 인골에 호모 네안데르시스(Homo neanderthalensis)라는 학명을 부여했다. 역사상 처음 생물학적으로 우리와 다른 인류(Homo)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기존 신학적 세계관으로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일이다. 미국 철학자 쿤(Thomas Kuhn)이 말한 패러다임 혁명(Paradigm Revolution)이 일어난 것이다.

변화의 첫 걸음은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에서 시작되었다. 1737년 린네는 생물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이명법(二名法)을 창안했다. 생물의 학명으로 속명(Genus)과 종명(Species) 그리고 명명자를 기재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종을 찾아 스스로 학명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사(natural history) 연구에 뛰어들었다. 린네 열풍은 유럽대륙을 휩쓸며 반세기만에 모든 도시와 지방에 자연주의자학회(naturalist society)가 설립됐다. 부유한 가정의 응접실은 희귀한 표본들로 채워졌고 양가의 규수들이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데생과 수채화를 배웠다. 린네 신드롬(syndrome)은 생물학에 멈추지 않고 광물학과 지질학, 지리학, 고고학으로 확산되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원정대가 꾸려져 대탐험시대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1740년 프랑스 댕카르빌(Pierre d‘Incarville)은 중국 북경에 머물며 식물 표본과 씨앗을 채집해 왕립식물원으로 보내고 중국식물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1775년 린네의 제자였던 스웨덴 툰베리(Carl Thunberg)는 일본 나가사키에 머물며 800여종의 식물을 채집하고 일본식물에 관한 책을 썼다. 1883년 독일 지질학자 고체(Carl Gottsche)가 우리 땅에서 채집한 표본과 기록이 함부르크박물관에 남아있다. 박물학(博物學)은 1750년 일본 노로겐죠(野呂元丈)라는 본초학자(本草學者)가 서양서적에서 ‘natural history(자연사)’를 번역하면서 지어낸 말이다.

▲ 프랑스 라마들렌 유적에서 발굴된 매머드 그림(C. Lyell, 1873, The Antiquity of Man).

19세기 중엽 프랑스 페르트(Jacques de Perthes)가 방대한 자연사 지식으로 마침내 선사시대 빗장을 풀었다. 1864년 프랑스 라마들렌 유적에서 발굴한 매머드 그림이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 멸종동물 매머드를 그린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인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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