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잘 배우기 위한 팁을 말하자면
외국에서 특정술집의 단골이 돼보라
본토사람과 부대끼다보면 어느새 술술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영절하’란 말이 한때 유행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란 뜻이다. 글쎄다.

1982년 3월 어느 날 아침. 처음 등교하는 동경대학 학과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백발의 노교수가 ‘오하이오(좋은 아침)’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한 나는 무언가 대답하긴 해야 하는데, 아는 일본말이 한마디밖엔 없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아침인사말을 고쳐주었다. 그랬던 내가 3개월 후 일본사람과 어려움 없이 일본어를 하게 된 얘기다. 나의 방법은 이러했다. 나는 매일 저녁 9시쯤 학교를 나와 혼자서 혼고산쵸메(本鄕三丁目) 지하철역 앞 어느 선술집에 들러 따끈한 정종 한 도쿠리에 오차즈께(물 말은 밥) 한사발로 저녁을 때웠다. 며칠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 집 주인장과 안면이 트이게 되었고 술 한잔의 용기에 되지도 않은 일본말을 지껄이게 되었다. 그런지 3개월 후 나의 귀와 입이 확 트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3년 후, 내가 박사학위 받던 날, 그는 나에게 술집 모든 공간을 제공하고 축하연을 베풀어주었다. 아무튼 나의 일본어는 그렇게 배운 것이다.

1991년 8월, 미국해군연구소에 방문 연구하던 시절, 워싱턴DC 교외 록빌(Rockville)의 한 선술집. 시원한 맥주가 무척 고팠던 어느 날 초저녁 혼자서 보무도 당당하게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키가 족히 2m는 될법한 청년 4명이 카운터 앞에 서서 맥주잔을 홀짝이며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맥주잔이 꼭 소주잔 만해 보였다. 테이블이 있는데도 그들은 꼭 서서 마신다. 아니 거의 안마시고 말만 한다. 나는 맥주 열병을 주문하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마스터가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양동이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맥주 열병을 거꾸로 꽂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카운터 앞에서 마시던 그 청년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들의 곁눈질이 느껴졌다. ‘정신 나간 동양인 아냐? 과연 다 마실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열병을 글라스에 따라가며 안주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모두 마셨다. 죽는 줄 알았다. 마지막 방울까지 다 마시고 계산하고 늠름하게 나가는 안경잡이 작은 체구의 동양인에게 그들의 눈은 놀라움 반, 호기심 반으로 두 배는 커져 있었다. ‘동양에서 온 당산대형이구나’라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그 다음날 또 갔더니 졸지에 나는 일등 손님이 되어 있었다. 어제 만났던 손님 중 일부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존경심(?)을 듬뿍 안고 앞 다투어 접근하였다. 그리곤 곧 친구가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그 집을 드나들었다. 몇 십 년 배웠어도 들리지 않던 영어가 3개월이 지나자 역시 쾅하며 터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연히 알게 된 울산대학교 외국어교육원에 강사로 와있는 한 미국인은 한국에 온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한국어를 못한다고 나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혼자서 소주 집에 들어가 소주에 낙지볶음이나 빈대떡을 주문해 먹어본 적 있느냐?’ 라고 물으니 그는 없다고 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지난 겨울 어느 날. 공업탑 모(某) 삼겹살집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중년의 미국인이 혼자 들어오더니 삽겹살에 소주 한병, 맥주 한병을 시키는 게 아닌가. 그는 책상다리에 상추에 삼겹살과 마늘을 싸먹으며 ‘쏘맥’을 만들더니 ‘크으’하며 원샷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되지도 않은 한국말로 말도 잘 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공단의 어느 회사에 파견되어온 지 한 달 되었다는데 거의 매일 온단다. 나와 매우 닮은 그는 조만간에 한국말을 매우 잘 할 거라고 확신했다.

어떤가. 요즘 학생들 외국어 배우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해외연수도 간다. 그러나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들과 한국어로 수다를 떤다. 당연히 그날 배운 외국어지식은 다시 원위치하게 된다. 이런 식의 외국어학습은 가성비(價成比)가 무척 낮다. 외국어를 잘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그 나라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외국에 나가 어느 특정 술집을 몇 달간 줄기차게 방문해 단골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술집에선 대화의 주제가 다양하며, 술기운 탓인지 상대의 이야기가 잘도 이해되고 또 쉽사리 의기투합하여 친해진다. 더욱이 술 한잔의 용기에 문법불문의 말이 잘도 튀어나오며, 그들 역시 말도 안 되는 나의 말을 잘도 이해해준다. 술집은 외국어를 실전적으로 익히기에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없다. 혼자서 본토사람 가득한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미 그 나라 말을 반은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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