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밥이 아니다’는 먹먹한 글귀에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열풍 떠올리며
정신의 허기 달랠 밥 더 많아지길 기대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10여 년 전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나의 큰 형님은 시인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예총과 문인협회 지부의 일을 보느라 늘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틈틈이 시를 쓰는 열정적인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유머와 위트를 가미한 ‘자기소개의 변’은 매우 독특하였다. “저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원로가수와 이름이 같은 대한민국의 유명한 시인입니다. 글을 잘 써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문단에서 얼굴이 검기로 유명한 김정구 시인입니다.” 검은 얼굴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이름 석 자를 단번에 기억하게 만드는 놀라운 ‘자기소개’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는 지인들의 후일담이다.

친척집을 방문할 때는 언제나 동생들도 모르게 미리 선물과 용돈 봉투를 준비하는 큰 형님의 준비성과 넉넉한 마음은 아마도 맏이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 명절인가 불쑥 “지갑 좀 보자”는 말에 ‘좋은 지갑’을 선물로 주시려나 싶었는데 ‘빈 봉투’를 쥐어 주시는 게 아닌가. “바빠서 깜빡 잊었다…”라는 말의 속뜻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우리 동생들은 큰형의 그늘에서 너무 철이 없었나보다. 그날 이후 우리 형제들은 명절이든 제사든 ‘봉투’를 꺼내면 ‘지갑’을 함께 열어 선물이나 제수를 준비하고 용돈을 모아 드리는 아름다운 우애를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우연히 형님의 쓰다만 시작(詩作)노트를 뒤적이다가 ‘시는 밥이 아니다’라는 글귀를 발견하고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보았다. “글은 취미로 쓰되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지는 마라”던 오래 전 충고의 의미를 이제야 알듯하기도 하다. 흔히들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글 쓰는 사람들의 푸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대물림 되고 있는 우리 문단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요즘은 ‘밥’이 달라지고 있다. 내가 사는 군포시에서는 ‘밥이 되는 인문학’이라는 강좌가 매달 열리는데 벌써 4년째이다. 이름있는 문인, 작가들이 출연하는 강좌인 만큼 내용도 충실하지만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로 매번 성황을 이룬다니 반가운 일이다. 끼니를 잇는 밥이든 정신을 살찌우는 지식이든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헌 노트 몇 장을 더 넘기노라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연유로 교우 관계에 있어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근검하되 인색하지 말 것, 그리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기’라는 말의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평소의 성품으로 보아 생계를 위해서는 절약을 하면서 교우관계 만큼은 인색하지 않으려 애쓴듯하다. 한편으로는 작가적 소신과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며 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으려는 다짐의 일면을 엿보며 이런저런 눈치를 살펴야하는 ‘굴신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해 본다.

모처럼 시골집 어두운 황토방에서 형님이 남기고 간 시작(詩作)노트를 읽으며 감나무 껍질처럼 조금은 검은 얼굴이었지만 감꽃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던 생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창밖에는 그의 시 ‘감꽃’의 마지막 구절처럼 ‘키 낮은 지붕위로 아무도 줍지 않는 감꽃’이 달빛 아래 지고 있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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