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울산시장후보 경선주자 2명이 확정돼 본격적인 경선레이스에 돌입했다. 오는 17~19일 조합원 투표를 실시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와 공동으로 뽑게 되는 민주노동당의 시장후보 2명의 성장과정과 주요경력 등을 나이순(현재 기호없음)에 따라 그 면면을 연재한다.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경선 후보자 성장과정·주요경력〉-송철호 후보〉

◇성장과정

1949년 부산시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난 송철호 후보는 어린 시절 부산과 전북 익산을 오가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했고, 울산에서 보낸 지난 15년간 노동조합 고문변호사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 등으로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평가받고 있다.

 송후보는 부산 보수동에서 태어났으나 해방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와 일제시대 만주에서 생활하다 부산으로 내려온 부친이 사회복지사업을 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미처 호적정리를 못한 관계로 조부모가 계신 전북 익산으로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는 것.

 송후보는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보수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이 더욱 어려워 할머니가 계신 익산으로 가 중학까지 마쳤는데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가족들이 모두 부산에 모이면서 부산고교에 입학했으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초·중·고교 시절엔 반장 등을 많이 맡았고, 고려대 2년 시절인 1969년에는 3선개헌반대 등의 학생운동을 하다 1년 휴학하기도 했다.

 군복무 뒤 1976년 졸업해 고시공부를 하면서 전문대 시간강사를 했고, 1979년 한국감정원에 입사한 다음 3년6개월간 주경야독을 해 1982년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주요 경력

송후보는 사법연수원을 거쳐 1985년3월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해 천주교 정의구현 부산·경남연맹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77년 울산시 중구 백양사에 공부한 추억 등으로 1987년초 울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오늘날까지 생활하고 있다.

 송후보는 이후 5년가량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노사분규 등을 겪을 때 노동조합측 구속자들의 무료변론을 하는 등 지금까지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울산민주시민회, 울산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울산여성의전화, 울산포럼, 생명의숲가꾸기 시민운동본부 등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울산광역시쟁취 시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96~97년), 울산YMCA이사장(99~2000년) 등을 역임한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송후보는 "현대 노조의 무료변론을 할 때는 다른 변호사를 찾지못해 나를 찾아왔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면서 "직장생활때도 노조대의원을 지냈고, 사시 합격 뒤에도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의 교가 한 구절인 "눌린 자를 일으키고, 굽은 것은 바로 편다"를 좌우명으로 삼았고, 이를 실천하는 사회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후보는 현재 울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유치 범시민추진위 공동대표, 천주교 울산지역 평신도 회장 등을 맡고 있는데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온 만큼 시민이 주인되는 시정의 최적임자임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약점과 반론

송후보에게 "국회의원선거 세번, 시장선거 한번 등 이번이 다섯번째 출마인데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실패를 반복해도 초지일관하는 모습이 좋다는 칭찬도 있고, 자주 출마해 식상하다는 비판도 있다"면서 "그러나 그 기준이 자기영달을 위한 출마이냐, 아니면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봉사 또는 정의를 위한 것이냐로 볼 때 오히려 강점"이라고 말했다.

 송후보는 또 "고속철도 울산역유치를 선거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는 물음에 "울산역을 유치할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해야 하며, 후손들에겐 시장이 누가 되느냐 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이므로 일부 오해를 받더라도 지속적으로 확산시키겠다"면서 "이번에 시장이 되는 사람은 기필코 울산역을 유치해야 하며, 아니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답했다. 송귀홍기자 khs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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