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울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매니페스토 정책선언 실천 협약식’이 열렸다. 울산시장 후보 4명과 교육감 후보 7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약속의 나무에 자신의 공약을 쓴 리본을 걸고 정책선거를 약속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이 퍼포먼스에 대해 믿음을 갖지 않는다. 단지 일회성 이벤트로만 여긴다. 유권자의 불신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마침 이날 정부는 산재모병원 백지화를 공식 발표했다. UNIST 인근에 연면적 4만19㎡, 200병상 규모의 국립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경제성(BC 비용 대비 편익)이 낮다는 판단에 따라 2차례에 걸쳐 규모를 대폭 줄이는 등 지난 5년여 동안 시간과 행정력을 엄청나게 기울였던 사업이다. 한때는 예비타당성 조사결과가 맞춰져서 확정 발표만 남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경제성은 0.73으로 기준점(0.8~1)에 근접한 반면 정책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종합평가(AHP)가 0.304로 기준점(0.5)에 못미쳤다고 한다. 신뢰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권이 바뀌어 정책적 판단이 달라졌다고 한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혁신형 국립병원이 설립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방도시에 국립병원을 설립하기까지 그 조건이 얼마나 까다롭고 절차는 또 얼마나 험난하던가. 이미 산재모병원 설립과정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울산에 국립대학을 세우고 KTX역사를 만든 것처럼 문대통령의 각별한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러니 이제 공은 온전히 정부에 넘어간 셈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정치권의 책임은 또렷이 남아 있다. 그 책임은 분명 정치권 모두가 져야 한다. 여야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룰 일이 결코 아니다. 하필 ‘매니페스토 정책선언 실천 협약식’이 열린 이날 벌어진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공방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먼저 박근혜 정권의 공약이 무산된 것이므로 자유한국당에 책임이 있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은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책임 있는 집권당이라면 오랜기간 공들여온 지역사업을 완성하지는 못한 것에 대해 먼저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혁신형국립병원 설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박 전 대통령 공약을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3년여를 허비하고서는 이제와서 더불어민주당의 ‘울산 무시’가 원인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지역 정치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일을 제대로 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 다음 국립병원 설립에 다시 힘을 모으는 것만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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