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 전 옥현중학교 교장

5월은 1년 중 기념일이 유난히 많은 달이다. 1일 근로자의 날을 필두로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9일 발명의 날, 20일 세계인의 날, 21일 부부의 날 겸 성년의 날 등 그 중에도 개인으로는 40년 가까이 몸담아온 교육 관련 스승의 날이 좀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옛말에 ‘군사부일체’라 하여 스승을 부모와 임금님과 같은 반열에 둘만큼 존경하는 대상으로 여겨온 것과 관련 있는 기념일이 스승의 날이다. 그 날이 되면 교문 앞에서 아니면 교실 입구에서 학생들이 꽃을 준비했다가 선생님들에게 떨리는 손으로 달아주면서 수줍어하던 앳된 소년·소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동안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빛을 잃은 지 오래고, 선생님들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유·무형의 폭력에 시달리는 일이 심심찮게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달아주던 꽃 한 송이도 무슨 법에 저촉된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금지되고 있는 현실이니, 스승의 날에 대한 옛 생각은 환상일 뿐이고 의미를 상실한 기념일이 되고 있다. 엄연히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인지라 법도 지켜져야 하지만 학교교육이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라면 굳이 학교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AI기능을 장착한 선진기기가 폭발적으로 발달하여 우리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상황이고, 학부모들의 평균학력이 선생님 못지않게 높아진 현실이니, 학부모들에게 지식교육을 담당케 하고, 부족하면 학원에 보내면 안될게 뭐 있겠는가.

사회가 변하고 전반적이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선 방향의 변화에 역으로 가는 인간교육은 결국은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고,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증이 드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이와 같은 세상의 흐름에도 개인적으로는 살맛나는 일도 있다. 필자가 모 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에 학교운영위원장으로 인연을 맺은 어느 사장님은 내가 교육계를 떠난 뒤에도 10년 넘게 명절이면 정성스런 선물과 함께 인사를 그르지 않고 있으며, 40여년 전 제자들이 찾아주고 선물을 보내오기도 한다. 지난 5월 초에는 나의 초임학교 제자 여섯명과 함께 학교가 있던 곳(수몰된 학교임)을 찾아 옛날을 상기하고, 약주 한 잔을 겯들인 식사를 함께했는데, 한 제자는 새벽같이 깊은 산을 찾아 그날 삼겹살과 함께 먹을 산나물을 채취하여 가져왔고, 다른 제자는 손수 마련한 벌꿀을 선물을 가져왔다. 또한 자리를 정리할 즈음에 한 제자가 ‘며칠 뒤 스승의날 때 찾아뵙지 못할 것 같다’며 수줍어한다. 이제 그들도 60을 훌쩍 넘어 어쩌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아닌가.

그렇다. 오늘날 스승의 날의 의미가 퇴색돼 가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스스로 미안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남다른 열정이나 애정을 가진 모범교사였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세월이 반세기를 넘긴 후에 이렇게 나를 환대해 주니 그들과 나는 어디 외계인이란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감상에 젖다보니, 걱정스런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친다. 20년 가까이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예쁜 화분이나 화환을 보내던 두 번째 학교 제자에게서 올해는 소식이 없다. 사업이 어렵나. 아니면 집안에 다른 어려움이 있나. 마음 같아서는 ‘요즈음 무슨 어려움이라도 있니.’ 묻고 싶지만. 아무튼 업이나 집안에 별일 없기를 바랄뿐이다.

김영윤 전 옥현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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