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Stories: - 심해(深海)는 생명력이 넘친다. 바닷속도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영원한 숙제다. 산호의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푸성귀로 情빚 갚겠다는 생각은
산짐승들로 헛된 망상이 돼버려
남새밭에 걸려든 어린 고라니의
필사적인 버둥거림을 보며
공생위한 새 경영철학 생각해봐

“꾸웨엑! 꾸웨엑!”

그물로 설켜 놓은 문을 열고 밭으로 들어서자 괴상한 울음이 들렸다. 특이하게 들리는 미운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고라니였다. 사람 기척에 어린 고라니가 방향을 잃고 우거진 풀밭에서 우왕좌왕 고래고래 날뛰는 것이다. 어미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치고 새끼만 남았다. 이걸 어쩌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나도 정신이 없었다. 천방지축 날뛰니 겨우 가꾸었던 작물이 패대기쳐진다.

그동안 이 녀석들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배추 열무 시금치 상추 등 부드러운 채소들은 얼추 자랐다 싶기도 전에 뭉텅뭉텅 먹이로 뜯겨 나갔다. 처음엔 보초를 설 수도 없고 해서 고스란히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월한 게 고구마라고 해서 여름 내내 거두었더니 어느 날 난장을 만들어 놨다. 알고 보니 산돼지와 고라니의 합작이었다. 손도 못쓰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도리 없었다.

그래도 얼추 달포가 좋이 흘러서 회복기에 들어 씨알이 생길 때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산돼지가 길다란 주둥이로 아작을 냈다. 얼핏 보면 꼭 사람이 일부러 알만 채가는 듯 정교하게 파내 갔다. 그 해 고구마 밭은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잎이 연할 때는 고라니 밥이 되고 씨알이 생기면 산돼지 차지였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얻어 울타리 군데군데 매달았으나 소용없었다. 맥이 빠져 이젠 그만 둬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이듬해 봄이면 또 잊어버리고 시작을 하게 된다. 이렇게 3년을 산 짐승들과 영역 싸움을 하면서 지내왔다.

노루나 고라니는 뒷다리가 길어서 높은 쪽으로 몰아가면 아무도 쫓지 못한다. 반대로 산위에서 아래쪽으로 몰이를 하면 긴 뒷다리 때문에 뛰지를 못한다. 그러니 고라니는 담이 여간 높아도 언덕에서는 쉽게 뛰어 드는 것이다. 반대로 산돼지는 기다란 주둥이로 땅을 파고 개구멍을 만들어 들어온다. 위 아래로 남새밭은 공격을 받는 셈이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여다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단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 자주 들리지 못한다. 농사 경험도 없다. 아직은 풀이 주인이다. 이런 것이 바로 짐승들이 즐겨하는 요건이 되는 줄 몰랐다. 거름, 비료, 농약이 없으니 기를 쓰고 밭으로 진입을 하는 것이다. 허울 좋은 유기농, 그러니까 배추는 짱딸막하니 질기고 대파는 누렇게 뜬 채로 꽃을 피웠다. 상추, 시금치는 채 뽑아 먹기도 전에 쫑대가 올라 쇠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내가 경영하는 남새밭의 현주소다.

나는 빚이 많다. 은행 빚도 있지만 정을 얹어 보내 주는 정빚이 엄청 많다. 초겨울에 고흥 바닷가에서 자란 유자를 깨끗이 손질하여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져며 청을 만들어 준 것을 받은 빚. 햇 생강을 얇게 져며 뽀시시한 편강을 보내줘서 간식으로 맛나게 먹어치운 빚. 가을 통무를 반쪽 내어서 시원하고 감칠맛 나게 담아 한 통씩 보내주는 것을 받은 빚. 매실을 손으로 까서 담아준 장아찌를 받은 빚. 밀양 냇가에서 잡은 고디엑기스를 받은 빚. 혈압에 좋다는 말벌 주를 패트병 가득 받아 든 빚. 최근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만도 아직 다 헤아리지를 못하겠다. 형제나 친척이 주는 것은 목록에 넣지 않는다. 이렇게 빚만 늘어 가다간 빚더미에 몸 붓살만 늘어서 내 몸은 기형이 될 것이다.

나도 이제 서서히 빚을 탕감하겠다고 청사진을 펼쳤던 것이 남새밭 경영이다. 탐스런 푸성귀로 이자에도 못 미치는 빚을 탕감하겠다고 용찬 출발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신선한 유기농은 헛된 망상이 되었다. 푸성귀로 조금씩 갚으려던 계획에 산 짐승들이 이자를 덧붙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금리는 높아지고 대출 기한은 연장이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이 일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거진 풀밭에서 한참을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겨우 붙들어서 꽉 껴안았다. 너무 당황해서 방향을 모르고 버둥거리기만 하던 녀석. 까맣게 반들거리는 눈이 동그랗다. 미운 목소리에 흑요석 눈을 가진 예쁜 고라니. 큰 고양이 몸집보다 약간 컸다. 심장이 얼마나 크게 뛰는지 코팅장갑 낀 손안에서 갈비뼈가 들썩거렸다. 잠시 흑심이 생겨 이 녀석을 키워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필사적으로 악을 써대는 야성을 이길 수가 없다.

고라니 소리에 아랫 밭에서 할머니가 오셨다. 고라니 뼈가 관절에 좋다는 할머니시다. 얼른 울 밖으로 넘겨 버렸다. 아마 어미는 근처 숲에서 애를 졸이고 있을 것이다. 어줍잖은 남새밭에 걸려 든 녀석은 혼이 다 빠졌을 것이다. 소일 삼아, 운동 삼아, 빚 탕감을 위해서는 안 되겠다. 같이 공생할 수 있는 뭔가 새로운 경영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박정옥씨

■ 박정옥씨는
·2011년 애지 신인상
·시집 <거대한 울음>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울산문인협회회원
·애지 문학회회원
·변방 동인

 

 

 

▲ 서경희씨

■ 서경희씨는
·울산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 졸업
·울산환경미술협회 회장
·한국미협 이사, 울산미협 초대작가 및 이사
·초대 개인전 및 부스 개인전 42회, 단체전 552회
·국내외아트페어 46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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