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선비는 고칠 수 없어라

▲ 이재명 선임기자

죽순(竹筍])은 열흘(旬)이면 굵어져 못 먹게 되기 때문에 그 이름(筍:죽순 순)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대(竹)는 나무인가 풀인가.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모도 아닌거시 풀도 아닌거시…사철 푸르니 그를 됴하하노라’라고 우정을 읊었다. 생물학적으로 대는 나무가 아닌 풀이다. 외떡잎에다 부름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림(竹林)’이라고 표현하면서 대나무를 이야기한다.

대나무는 모진 바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선비의 기상으로 그려졌다.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풍죽도(風竹圖)’.

오만원권 지폐 뒷면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가 혹한을 견디고 피었다면 ‘풍죽도’의 대나무는 추상같은 선비의 기상을 몸소 보여준다. 거친 바위틈에 뿌리내려 휘몰아치는 강풍을 맞고 있는 태화강변 오산의 대나무숲, 부러지지 않는 절개의 대숲이 태화강에서 또 하나의 풍죽도를 그려낸다.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을지언정(可使食無肉)/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을 수 없네(不可居無竹)/고기 먹지 않으면 사람이 여윌 것이고(無肉令人瘦)/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저속하게 한다네(無竹令人俗)/사람이 여위는 것은 살찌게 할 수 있지만(人瘦尙可肥)/속된 선비는 고칠 수가 없어라(士俗不可醫)……소동파 ‘녹균헌’

▲ 풍죽도(간송미술관, 5만원권 뒷면)

소동파의 시 녹균헌(綠筠軒)은 ‘푸른 대나무의 집’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죽림 바깥의 속된 세상에 너무 닳다보면 치료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요(녹죽군자절 綠竹君子節)이요/푸른 소나무는 장부의 마음이로다(창송장부심 靑松丈夫心)이라/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인심조석변 人心朝夕變)/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구나(산색고금동 山色古今同)이라-‘녹죽군자절’(추구집 推句集)

태화강 대나무 가운데 맹종죽(孟宗竹)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 사람인 맹종은 겨울철 죽순을 먹고 싶어하는 모친을 위해 몇날 며칠 동안 대밭을 헤매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대밭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맹종은 어느날 눈물자국에서 대나무 순이 돋는 것을 보고 모친을 지극히 간병했다고 한다. ‘눈물의 죽순(맹종읍죽(孟宗泣竹)’이라고 할까.

6월이 되면 죽순이 하루에도 수십㎝씩 자란다. 하도 빨리 자라서 서가종죽(西家種竹)동가치세(東家治世)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서쪽집 죽순이 동쪽집 지나 대숲을 만들었다는 것. 죽순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법을 어기고 군자의 체통을 잊으면 속됨을 고칠 수 없다.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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