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평온한 마지막을 배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임종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돼야

▲ 손경숙 울산중구시니어클럽관장 전 한국시니어클럽협회장

20여년간 소외계층 노인들의 무료진료를 지원해 주던 의사 선생님이 얼마 전 병원을 접고 요양병원 원장으로 가셨다는 소식에 그간의 후의에 감사인사를 드릴 겸 찾아뵈었다.

“삶의 끝자락에 계신 분들을 돕는 일이라 남다른 보람이 있으시죠?”했더니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늘 한계가 있으니….”하신다. 고뇌에 찬 그 말씀에 며칠 전 TV를 통해 보았던 호주 최고령 과학자인 104세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자살여행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자신의 안락한 마지막을 위해 아직 아픈 데는 없지만 자살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스위스로 자살여행을 떠난다던 노인의 담담한 인터뷰장면과 ‘환희의 송가’를 흥얼거리던 편안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필자도 오래전 호스피스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있으며 살아온 날보다 돌아갈 날이 더 가까운 나이에 와 있으니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해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호스피스활동 중에는 임종을 앞둔 환우들의 절박한 애착과 만나기도 하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떠날 시간을 속수무책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두고 함께 아파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통과로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10월부터 시범시업을 거쳐 올해 2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면서 향후 임종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은 물론 임종기의 의료 행위가 ‘적극적 치료’에서 ‘돌봄’으로 전환될 것이라 한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도 존엄사를 합법화한 국가에 든 셈이다.

‘안락사’와 ‘존엄사’를 두고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편안한 떠남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에는 조심스럽지만 반기는 마음이다. 환자의 요청에 의해 치료행위를 중단하는 안락사든,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 또는 가족의 동의에 의해 적극적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존엄사가 되든,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평온한 마지막을 위한 배려여야만 한다. 필요 이상의 번거로운 절차는 간소화하고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의지 저 너머의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이 세상에 왔을 것이다. 올 때는 우리의 의지가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한 생(生) 잘 살고 떠날 때는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사위어 가는 생일지라도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다. 그러니 부추길 필요는 없다. 다만 남은 시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연장이거나 더는 회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본인의 존엄한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고 편안한 생의 마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중 뉘라서 생에 대한 애착이 없을까만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생명에 대한 애착은 더 깊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떠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자는 듯이 가야 할 텐데….”

잘 사는 것만큼 잘 떠나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생명이 유한한 것이라 때가되면 기어이 떠나야 하는 것이라면 잠자리에 들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고이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생(生) 후회 없이 살았으니 소풍가는 아이처럼 떠날 수 있길, 진언처럼 읊조리던 어르신들의 바람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오늘 아침,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손경숙 울산중구시니어클럽관장 전 한국시니어클럽협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