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살률 OECD 국가중 1위
자살예방을 위해 함께 힘모아야

▲ 주동훈 울산중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 피해자전담경찰 경사

경찰관으로서 떠올리기 싫은 뼈아픈 기억이 있다. 9년 전 어느 봄날. 그때 우리 사회는 탤런트 최진실의 자살에 가슴 아파했고 그 슬픔의 앙금이 미처 가라앉지 않았을 때였다. 인터넷에는 동반자살을 생각하거나 죽겠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마침 그 단서 하나로 글을 올렸던 한 청년의 집을 찾게 되었는데, 낡고 쓰러져 가는 집의 문을 열어준 건 그 청년이 아닌 시각장애인이었던 아버지였다. 가출해 연락도 닿지 않는 청년의 아버지께 차마 상세한 말씀은 못 드리고, 수소문 끝에 노래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경찰임을 밝히자 그 청년은 묻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이유를 직감한 듯 “며칠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그때 너무 힘들어 술김에 썼던 글이었어요”라며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마침 여자 친구와 연락이 되었고, 다시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어깨를 다독여주며 힘내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보름 뒤 사건을 종결하려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 청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살의 신호를 술김의 실수로 받아들인 것이다. ‘술김에’라는 그 청년의 말을 너무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인터넷에 죽겠다는 그 글을 쓰기까지 그 청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내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충분히 들어줬어야 했는데 나에게 그런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나약한 마음을 먹으면 쓰나?’며 자살은 나쁜 것이고 너의 선택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비췄다. 그 청년은 자살이라는 말을 다시는 꺼낼 수 없었고, 자살이라는 외침을 통해 살고 싶다는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5.6명, 연간 자살사망자 1만3092명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자살률은 교통사고사망률(10.1명)의 2.5배 수준이고, 13년간 OECD 1위(OECD 평균 12.1명)를 차지해왔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자살률이 2011년에 31.7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했으나 획기적 변화에는 한계가 있어 이 추세대로라면 OECD 1위 탈피가 어려워 보인다. 한해 자살사망자의 기대소득 손실만 6조5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고, 자살유가족의 자살위험이 일반인 대비 8.3배일 정도로 유가족이 느끼는 고통도 심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정부가 역대정부 최초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며 자살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자살은 각 개인의 정신적·경제적 문제와 신체질병 등 다양한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지역·거시경제 문제에서도 기인하는 만큼 자살예방 대책도 정부 일부 부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고위험군을 발견하고, 이들을 지역사회의 정신건강 서비스에 연계하기 위한 전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경찰도 그동안 비(非)범죄인 자살에 대해 무관심했다. 변명 같지만 경찰이 알고 있는 자살 위험군 정보가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로막혀 자살예방센터에 공유되거나 활용되기 어려웠다.

울산중부경찰서는 경찰 최초로 △자살유가족 △자살기도자 △범죄피해자 △정신질환자 등 4개의 자살 위험군 정보를 활용하여 자살예방센터에 연계하는 생명사랑지킴 위드유(With You)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자살유가족에게 심리지원 정보를 제공하고, 자살신고 등을 사후 모니터링 후 대상자의 동의를 받아 자살예방센터로 연계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정보제공에 경찰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겠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 일부의 노력만으로는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9년 전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청년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힘든 얘기 꺼내줘서 고마워요. 나는 당신이 꼭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주동훈 울산중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 피해자전담경찰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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