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가 뇌옥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대가야의 장군 후누가 들피진 몸으로 옥벽에 기대어 있었다. 대가야의 군신지였던 후누 장군은 정변을 일으킨 박지와 석달곤의 연합군을 막지 못하고 붙잡혀 컴컴한 감옥에서 부지하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명림원지는 후누에게 큰절을 했다.

“장군님, 저 명림원지가 왔습니다.”

“오, 그대가 날 만나러 온다던 하지왕의 책사 명림원지로군.”

이미 명림원지는 후누장군에게 옥중에서 만나기로 통기를 해놓았다.

“그러하옵니다. 고명하신 장군님을 뵈오니 광영입니다.”

“패장이 되어 죄수가 되었는데 무슨 고명한 장군이오. 헌데 난 그대가 옥중 면회를 올 줄 알았는데 아예 나하고 똑같은 죄수가 되어 들어왔군.”

“장군님을 편하게 만나기 위해 잠시 쉬러 왔습니다.”

“허허, 그대에 관해 익히 소문은 들었지만, 감옥에 쉬러왔다니 범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군.”

“하도 감옥을 오래 살아 이곳에 들어오면 내 집같이 편안합니다.”

명림원지는 후누와 같은 옥방에 머물면서 하지왕의 근황과 그동안 대가야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이야기했다. 둘은 가야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뜻을 모아갔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박지에 대해 입장 차이가 틀어졌다. 우사와 모추도 마찬가지였지만 명림원지는 결국 둘을 설득한 바가 있었다.

명림원지는 후누 장군에게 말했다.

“박지가 신라와 손잡고 정변을 일으킨 후, 자기 아들 구야를 왕으로 세워 대가야의 권력을 농단하고 있지만 그의 외교력만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박지 집사는 정치적으로 고구려, 신라에 의존하여 안정을 꾀했고, 경제는 정치와 분리하여 적국인 왜와 백제와도 교역해 실리를 꾀했다. 더욱이 여가전쟁 이후 금관가야가 몰락함으로써 금관가야의 지식인들과 주민들이 낙동강을 따라, 검바람재를 넘어 대거 대가야로 이동하면서 대가야의 번영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하지왕이 돌아오시면 22가야를 일통하는데 그의 재능이 꼭 필요합니다.”

후누 장군이 퉁을 놓았다.

“명림원지, 이 이야기를 하러 여기에 왔구만.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간악한 박지와는 같이 일하지 않겠네.”

“장군,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원한은 잠시 내려두어야 합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갈갈이 찢겨진 22가야의 일통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군사력만으로는 가야를 일통할 수 없습니다. 가야 절반은 무력으로 통합하되 나머지 절반은 박지의 외교술로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회한 박지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난 박지와는 타협하지 않겠네.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밖에.”

후누 장군의 입장은 단호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밖에. 【S】vahe(바헤), 【E】outward, without. 우리말 어원은 ‘ ㅸㅏ헤’로 산스트리트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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