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협상할 단 한 가지 자산이 남아 있다’는 명림원지의 말에 박지는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명림원지는 무서운 놈이다. 대가야를 지탱하는 세 기둥인 왕권과 군대, 경제를 이미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왕권은 하지왕의 고구려의 책봉을 통해 장악했고, 군권은 고구려왕의 칙명을 통해 석달곤의 군대를 신라로 철수시켰다. 더욱이 이 놈은 대가야군의 수장인 후누 장군을 장악하러 감옥까지 들어온 놈이 아닌가. 마지막 하나 틀어쥐고 있는 밀교역의 망조차 수수보리를 통해 다 파악해버렸다.

그러면 이제 나는 놈과 협상할 패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남은 단 한 가지 자산이란 무엇인가? 마치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나뭇가지 하나를 잡고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명림원지가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집사님은 이제부터 권력과 군대, 교역에서 손을 떼시오. 집사님의 가장 큰 자산은 무형의 외교술이오. 그대가 누구보다 탁월한 외교술로 22 가야제국을 일통하는데 하지왕을 도와주시오. 그것만이 그대가 살 길이오.”

그러나 박지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네 놈의 허언에 넘어갈 줄 아느냐? 난 지금 대가야의 집사이고, 아들은 왕이다. 네 놈은 감옥에 같인 죄수 주제에 무슨 공갈, 협박을 하느냐?”

“허면 대가야의 최고 지위에 있는 분이 뭐가 아쉬워 여기 뇌옥을 찾아와 일개 죄수인 나와 협상하려는 것이오?”

“그저 괴짝스런 네 놈은 행태를 파악하러 왔다. 후누와 함께 죽을 때까지 이 뇌옥에서 썩어라.”

박지는 옥 창살에서 손을 떼고 돌아섰다.

“지금 하지왕이 성문밖에 도착하고 있소이다. 정녕 그대가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들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싶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오, 박지 집사.”

박지는 감옥의 옥관에게 명령했다.

“주댕이만 살아 있는 놈이군. 이 옥방의 두 놈을 포박해 내 집의 지하 사옥에 넣어라.”

박지는 후누와 명림원지를 인질로 잡아 하지왕과 담판을 짓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박지 집사, 나에게는 그런 외교술이 통하지 않소. 삿된 생각을 버리고 이제 솔직해지세요. 그대와 나, 후누 장군과 함께 이 옥문을 나서 하지대왕과 상희공주를 맞으시지요. 감옥 밖에는 하지왕을 수행했던 나의 두 부하가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명림원지가 고구려왕의 칙명을 들고 온 고두쇠와 텁석부리까지 이야기를 하니 박지는 혀를 차며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와륵선생, 당신은 도대체 사람이요, 귀신이요? 좋소이다, 두 분 나오시오.”

후누 장군은 박지의 말을 듣자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저 간악한 역적 박지 놈을 여기 옥방에 처넣지 않는 한, 나는 여기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걸세!”

결국 명림원지와 박지 둘 만이 뇌옥 밖으로 나와 텁석부리와 고두쇠를 만났다.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삿: 【S】sac(삭), 【E】vicious. ‘satan’도 ‘삿되다’의 ‘삿’에서 나왔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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