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총선서 반체제정당 집권
최저소득보장·연금지급연령 하향
포퓰리즘 정책, EU와 공방 가능성

▲ 권승혁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지난 3월 실시된 이탈리아의 총선 결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이 제1, 2당을 차지했다. 두 당 모두 이른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당으로서 조만간 연립정부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성향과 지지층이 다른 두 포퓰리스트 정당이 손을 잡고 연립정부 구성에 나서게 된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EU 반대 입장이 그것이다. 총선과정에서 이들은 이탈리아가 곤경에 빠져 있는 원인을 EU 탓으로 돌렸다.

포퓰리스트 정당답게 감세, 최저소득보장, 연금지급연령 하향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공약들을 실행에 옮기면 재정지출이 늘어나 EU가 중시하는 재정규율의 준수가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

EU는 재정악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가맹국이 GDP 대비 3% 범위내로 재정적자를 억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가맹국의 예산을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가 재정규율을 지키지 못할 경우 2019년 예산 승인을 둘러싸고 EU와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

EU를 비판하면서 탄생한 포퓰리스트 정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SYRIZA)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이 그 선례이다.

SYRIZA는 EU에 의한 그리스의 긴축재정조치 철회 관철을 공약으로 2015년 1월 제1당으로 부상했다. 당시 그리스는 EU와 IMF에서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재정재건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EU는 추가적인 자금지원 조건으로 긴축재정과 구조개혁을 그리스에 요구했다. 치프라스 정부가 이에 반발하면서 그리스의 유로 이탈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으나 결국 반란은 6개월만에 EU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선에서 끝났다. 이후 재정상태가 개선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올해 8월로 구제금융 체제의 종료를 공언하고 있으나 이를 위한 추가적인 긴축정책에 최근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다.

3년전 그리스와 EU의 공방은 그리스의 자기중심적인 입장을 EU가 억누르는 형태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나 내막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유로지역 채무위기를 힘겹게 극복한 EU는 재정규율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그리스와 같은 수출경쟁력이 빈약한 국가에 재정긴축 우선의 정책을 강요함으로써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같은 작은 나라 입장에서는 EU로부터의 이탈은 극약처방과 같은 것이며 국민들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결국 재정긴축 철회의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치프라스 정부는 재정재건으로 방침을 선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차기 정부는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까? 선거공약을 어디까지 실행에 옮길 것이며 이 과정에서 EU와의 긴장관계가는 어느 선까지 높아질 것인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지난달 체결한 연정합의서만 보면 채무재조정, EU규약 수정 등과 같은 과격한 제안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차기 정부의 反EU성향이 EU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하거나 유로지역 전반의 재정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과거 두 차례(1998년, 2011~2012년) 위기상황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EU 내 질서를 준수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차기 정부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성운동’과 ‘동맹’의 의석수가 과반을 겨우 상회하는 수준인 점, 친EU 성향인 마타렐라(Mattarella) 대통령의 견제,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反EU 공약들이 상당부분 실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유로지역에서 차지하는 이탈리아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탈리아가 재정위기 상황에 봉착할 경우 유로지역 경제는 그리스 재정위기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큰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10배에 달하며 공적채무잔액은 그리스의 7배에 이르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선택이 글로벌 경제의 관전 포인트로 계속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의 근거이기도 하다.

권승혁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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