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가족애·월요병·금요일의 여유등
부지불식간에 떠올리는 자동사고는
생각에너지 아끼고 바른판단 돕지만
오작동땐 공황장애·대인공포등 초래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 망치거나
안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많아
성공을 위한 노력에 부작용이 있다면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행복의 원천은 반복되는 일상에 있어
현실을 수용하고 삶을 즐기며 축적한
자동사고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것

요즘 자동차 자율 주행 기능의 발전은 놀랍다. 아직 완전 자율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편리함의 차원이 다르다. 정속으로 주행하는 것은 기본,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로 앞차와의 거리와 주행 속도에 맞추어 변속한다. 웬만한 고속도로에서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별로 없다. 평균 시속 100km 구간 단속에서는 알아서 시속 99km로 주행한다. 이렇다보니 운전 중 피로를 줄이고 대화도 편히 나눌 수 있다.

인간의 몸도 자율 보행 기능이 있다. 우리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시각 센서로 돌부리를 확인하고 귀의 평형기관과 소뇌의 도움으로 몸의 균형을 잡아서 적절한 보폭만큼 내딛는다. 이런 정교한 동작을 하느라 정신을 바짝 집중할 필요는 없다. 험한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면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맡겨두면 될 일이다. 걷다가 공이 날아오면 자동으로 움찔 고개를 움직여 피할 수도 있다. 우리는 걸음에 신경 쓰지 않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사색에 빠질 수도 있다.

반사적인 동작뿐 아니라 학습된 행동도 뇌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더라도 금방 옛 실력을 되살린다. 암기한 지식은 복습하지 않으면 쉽게 잊히지만 행동 기억은 오랜 세월을 버텨 낸다. 행동처럼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도 있을까?

우리는 가족에서 따뜻함을, 옛 친구에서 반가움을, 금요일에 여유를, 월요일에 긴장감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 가족에게 서운함을, 월요일에 활기를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이처럼 자동 사고는 생각 에너지를 아끼고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지만, 어쩌다 방향이 잘못되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공황장애는 흔히 고장 난 알람시계에 비유된다. 아무 때나 불안발작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환자가 신체 느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운동해서 숨차거나 두근거려도 이것을 발작의 조짐으로 여기는 자동 사고가 발동한다. 예전에 불안 증상 때 겪었던 두근거림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제 곧 공황발작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은 불안과 두근거림을 키워서 실제 발작으로 이어지곤 한다. 생길까봐 우려하던 일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셈이다.

대인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색한 표정을 상대에게 들킬까봐 걱정한다. 혼자서는 편히 있다가도 사람을 대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린다.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다보니 오히려 표정이 굳어지고 말도 더듬게 된다. 짧은 어색함은 자신의 우려를 확인한 셈이 되어서 낭패가 되고, 불안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무리하게 애쓴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안 될까봐 걱정하거나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야구 선수가 한번 크게 치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헛스윙을 한다. 테니스나 골프 선수가 한 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평소 잘 나가던 가수가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무대에 오르지 못하기도 한다.

만능 해결사이자 성공의 필요조건 같아 보이는 노력에 이런 부작용이 있다면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지만 노력의 방식과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만만치 않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물론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괜한 욕심이나 집착에 빠져 헛심을 쓰면 곤란하다. 몸과 마음의 느낌을 알아채고 삶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의 원천은 대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있다. 매일 보는 가족과 동료들, 똑같은 듯하지만 계절 따라 변하는 가로수, 그리고 하늘 스크린에 저녁마다 무료 상영하는 저녁놀…. 삶을 즐기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축적된 자동 사고는 자율 주행 자동차처럼 우리를 행복의 길로 편하게 인도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생존에 대한 불안은 느긋하게 즐길 여유를 앗아간다.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뒤처질까 잔뜩 긴장하여 쉴 새 없이 눈치 보는 습관은 잘못된 자동 사고를 만든다. 요즘 두드러진 자동 사고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생존과 안정을 위해 돈은 꼭 필요하지만 그 한계도 뚜렷하다. 행복의 원천은 대개 우리 주위에서 거저 주어지는데, 매사에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주위의 보물에는 쉽게 흥미를 잃는다. 심지어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고 무시하는 속마음이 갑질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만족을 모르고 한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은 행복의 최대 적이다. 지나가는 빠른 차를 모두 따라잡겠다는 헛된 목표는 우리의 노력을 한없이 소모해서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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