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그림 이상열

청년 하지왕이 금관가야의 늙은 너구리 이시품왕과 다혈질인 아라가야의 왕 안두루와 동맹을 맺으러 낙동강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대가야의 회천 나루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따라 삼랑진을 거쳐 금관가야의 구포 나루로 내려가는 물길이었다. 배는 고구려로 가는 조운선이었다. 조운선은 낙동강의 물결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푸른 수양버들이 강의 양편 언덕에서 줄지어 춤추며 지나가고 있었다.

조운선은 조세인 양곡과 마포를 실어 나르는 단순한 세곡선은 아니었다. 머무는 정박지마다 사람과 물화를 내리고 실으면서 남방의 물화를 북방으로 전달하고 북방의 문화를 남방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박지는 대가야의 미인 서희를 데리고 배를 탔다.

서희는 목에는 살결처럼 매끄러운 긴 두 겹 상아 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손목에는 상아단주 팔찌를 하고 있었다.

박지가 서희에게 말했다.

“목걸이과 팔찌가 아름답구나.”

“제 노리개지요.”

“물화를 잔뜩 싣고 온 남방 상고에게 받은 게 분명하렷다.”

“그러하옵니다.”

“이번에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겠지?”

“대가야를 위해 이 한 몸을 바치는 것 아닙니까?”

“그래, 자신이 있느냐?”

“나으리, 지금까지 제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상고나 장군이었다. 이제는 나라의 왕이다. 대가야의 국운이 너에게 달려 있다.”

“하오면 제가 저 하지대왕을 한번 유혹해 보리까?”

하지대왕은 물살을 헤지고 지나가는 고물 앞에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야흐로 배는 낙동강 물줄기를 타고 내려와 삼랑진을 지나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머물다 지는 순간이어서 낙동강 물결은 온통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숲은 수묵화처럼 그윽했고, 강가 갈대밭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왕은 미동도 않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음, 그건 절대 안 돼!”

박지는 이제 대가야의 국정을 농단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그런 일이 국정농단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는 순간 신안신통의 명림원지 칼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더욱이 하지왕의 곁에는 눈 밝은 상희왕비가 질투의 눈초리로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우사 집사와 후누, 모추와 소마준 모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박지는 서희에게 엄히 명하고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서희는 상아단주를 만지작거리며 하지왕 곁으로 나아갔다.

“마마,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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