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면 문제해결 영원히 안돼
불법촬영영상 시청은 명백한 범죄

▲ 이경식 울산폴리텍대학 겸임교수 (주)쓰리디허브시스템즈 대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어쩌면 매일 크고 작은 공포와 대면하는 나날을 보낸다는 것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길거리, 대중교통, 계단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서까지 그 모든 일상적인 공간에서 ‘혹시 내가 불법 촬영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소형 몰래 카메라가 있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여성들은 부지기수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여성이 여성이라는 성별로 살아가기 벅찬 곳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5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그리고 현재 이 청원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사람은 41만명을 넘어섰다. 이 청원은 홍대 누드크로키 모델의 불법 촬영 사건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는데, 이 사건을 위해 경찰은 20명의 용의자를 모두 다 조사하고 피해자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직접 자료수집까지 했으며 언론은 가해자만을 비난하였다. 용의자 특정부터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숱하게 일어난 여성 대상 불법 촬영 사건과 무척 대비되는 결과였다. 이런 온도 차이는 5월19일 토요일 혜화역 시위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불법 촬영 발생 건수는 1~8월 약 3914건이었으며 이 중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은 3239건으로 90%가 넘는 수치이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도 하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였지만, 무죄 혹은 집행유예로 처리되거나 혹은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고 사진이 퍼진 곳이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수사 자체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평소의 미온적 대응으로 인해 이번 사건과 무척 대비되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난 19일에 열린 혜화역 시위는 당초 경찰이 예상하던 1000여명을 뛰어넘는 규모인 1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가하였다. 이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이자 그동안 공공연하게 자행되어온 여성 차별에 대해 토로하는 시위였으며, 미투 운동이 확산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 전반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동일 범죄, 동일 수사’를 요구한 이 시위는 그동안 겪어오던 수많은 여성대상 범죄에 불안해하던 여성들이 드디어 거리에 나와 1만명 이상 분의 큰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검찰청의 카메라 등 이용 촬영에 의한 성폭력 범죄 발생 추이 그래프에 따르면 2007년 564건에서 2017년 6612건으로 10년 동안 10배 이상 대폭 늘었다. 불법 촬영은 쉽게 유포될 수 있으며 2차 가해가 일어나기 쉬워 피해자에게는 더더욱 끔찍한 사이버 성폭력이다. 하지만 불법 촬영된 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고 있고 또 늘어나고 있기에 관련 범죄도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불법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을 시청하며 소비하는 것조차 범죄라는 인식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 이것은 2차 가해이며 명백히 범죄이다.

매일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범죄에 노출되어 불안에 떠는 여성들이 지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성별 관계없는 보호를 국가에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토니 포터는 그의 저서 <맨박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여성 폭력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자기 일처럼 나서야 한다고 하면 흔히 물리적 충돌을 떠올리지만 그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일처럼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공권력에 신고하는 것, 다른 남성들의 사고방식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 남자아이들에게 가르칠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시 논의하는 것, 여성을 고려하여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 등이 모두 돕는 방식에 포함된다” 전 국민이 불법 촬영에 대한 걱정없이 살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우리부터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하자. 바로 지금부터.

이경식 울산폴리텍대학 겸임교수 (주)쓰리디허브시스템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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