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청년 하지왕은 뱃머리에 용두와 함께 우뚝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희가 하지왕에게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마, 날은 어두운데 무얼 그리 보고 계십니까?”

“서희로군. 배 위에서 밤하늘을 보면 어디가 하늘이고 강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내가 별 속을 헤집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어.”

“아, 여기 고물에선 일어서기만 해도 이마에 별이 부딪힐 것 같아요.”

서희가 가녀린 손으로 하얀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허긴 하늘의 별과 강물의 별, 온통 별천지야.”

“아, 별밤에 취할 것 같아요.”

서희가 휘청하며 하지왕에게 기대었다.

하지는 서희를 붙잡으며 말했다.

“조심해. 여기서 떨어지면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아. 배는 빠르고 강은 깊지.”

“고마워요, 마마.”

서희는 하지왕의 손을 잡았고 하지왕도 휘청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세웠다.

“오늘 밤 자시면 삼랑진을 지나고 새벽에는 낙동강 하류 삼각지인 금관항에 닿겠지. 과연 금관가야의 이시품왕과 아라가야의 안두루왕과 동맹을 맺을 수 있을는지……”

“염려 놓으세요. 박지 교신지는 외교에 능수능란한 분이라 잘 될 겁니다.”

서희가 머리를 하지왕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었다. 교교한 밤공기는 두 젊은 남녀를 잠시 혼미하게 했다. 알싸한 이 밤공기에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발효 성분이 섞여 있는 듯했다.

하지왕은 서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밤공기의 비밀스런 분위기가 서희의 얼굴을 달밤의 달맞이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했다. 허리를 잡은 그의 손에서 묘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신이 빚어낸 듯한 그녀의 몸은 갓 잡아 올린 잉어처럼 탄력과 힘이 넘쳤다. 낮보다 밤에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여자인 듯했다.

‘박지는 아마도 이 여자를 아라왕 안두루에게 상납할 테지. 한반도의 춘추전국시대에 국익을 위해 미인계에 이용당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련한 여인의 운명이다.’

별똥별 하나가 맑은 밤하늘에 불꼬리를 달고 지나가고 부엉이 울음소리에 밤의 정적이 깊어졌다.

서희는 열 개의 밤을 가진 여인이었다. 낭만적인 밤의 대화를 나누는 초승달의 밤, 서로 술잔을 나누는 교교한 반달의 밤, 풍만한 육체를 채워주는 보름달밤, 비단보다 더 부드러운 살결로 달빛을 토해내는 교교한 달밤이 있는가 하면, 옥문을 죄어 남자의 힘을 소진시키는 치명적인 교합의 그믐밤도 있었다.

그녀는 고관대작과 이름 모를 장삼오사, 아는 남자와 모르는 남자, 기억조차 나지 않은 사내들과 숱한 밤을 보낸 밤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뭇 남자들과 수많은 교합을 나눴지만 육체적 쾌락만이 스치고 지나갈 뿐 마음은 텅 비었다.

그녀는 하지왕에 가슴을 바짝 기대며 몸을 떨며 말했다.

“마마, 소녀 밤바람이 춥사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위하다: 【S】uhda(우흐다), 【E】serve, attend to. ‘爲’(위)는 ‘御’(어), ‘禦’(어), ‘祐’(우),‘佑’(우)와 동의어임.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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