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밤 추위를 핑계로 서희는 자연스레 하지왕의 선상 침실로 따라 들어갔다. 침실에는 쌀과 누룩으로 만든 가야주 한 단지와 육포가 놓여 있었다.

서희가 몸을 떨면서 하지왕에게 말했다.

“저기 술이 있군요. 한 잔 하면 추기가 덜할 것 같아요.”

“뱃머리에 오래 서 있었더니 나도 몸이 추워. 한 잔 하지.”

서희가 술을 가야 긴 오리모양의 고배잔에 술을 따랐다. 하지왕은 술을 마시니 몸이 더워지고 뼈마디가 풀렸다.

하지왕이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 손목에 두른 하얀 단주는 무엇이오? 염주와는 다른 것 같고.”

“이건 특별한 용도가 있습니다. 한번 맞춰보세요.”

“그 구슬로 점을 치는 것인가?”

“땡, 틀렸어요. 제 몸 안에 놓는 것인데, 한번 만져보세요. 얼마나 매끄러운지.”

서희는 하지왕에게 상아단주를 하지왕에게 건넸다.

‘몸안에 놓는 것이라.’ 하지왕이 상아단주를 만지작거리다 무슨 생각 때문인지 달아오른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졌다.

‘설마, 이것을 옥문에?’

하지왕은 기묘한 상상에 젖어 버린 것이다.

‘이 구슬로 점을 치기보다는 옥문을 명기로 단련하는 노리개일 것이다.’

서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짐작하셨군요.”

“글세, 난 모르겠는 걸.”

하지만 하지왕은 알고 있었다. 미인계에 종사하는 여자들이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가꾸고 있다는 것을. 분문처럼 협착하고 말미잘처럼 옴죽거리는 옥문이 타고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것도.

‘서희는 이 상아단주로 옥문을 단련한 게 분명해.’

이런 상상을 하며 상아구슬을 만지작거리니 손바닥에 음충맞은 쾌감이 전해졌다. 헌데 하지왕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게 아닌가. 손이 빠른 서희는 가야주를 고배잔에 따르면서 소매에 미리 감춰놓은 미약을 탄 것이다. 서희가 탄 미약은 원지, 사상자, 토사자, 부자, 아편, 대마, 음양곽을 달인 액으로, 먹는 순간 근이 흥분되고 마음이 혼미해 삿된 환영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정신을 잃게 된다. 미약을 탄 술을 마신 하지왕은 생각이 뒤섞이고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치부일 수도 있는 소중한 상아구슬을 나에게 주다니. 서희가 나를 신뢰한다는 것인가?’

서희가 하지왕의 옷을 벗기며 말했다.

“마마, 오늘 피곤하신가 봐요. 침상에 누우소서.”

서희도 옷을 벗고 하지왕과 나란히 침상에 누웠다. 왕은 무의식적으로 서희를 끌어안았으나 서희는 시딱할 생각이 없었다.

▲ 그림 이상열

우리말 어원연구

시딱하다: 【S】sita(시타), 【E】sound of sex. 성교하다. 시딱시딱 처리하다.(의성어)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