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어느 여름, 가세가 기울어 갈 곳 없어진 늙으신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이모님 댁에 모실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아들. 모자는 이별에 앞서 설렁탕집에 들릅니다.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깃국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는 어머니가 고깃국을 먹자는 마음을 헤아리며 아들은 수저를 듭니다. 댓 숟가락 국물을 떴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문득 주인아저씨를 불러, 소금을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합니다. 마음 좋은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고 어머니는 몰래 그 국물을 아들에게 따라 줍니다. 그런 모자의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척,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주인아저씨. 아들은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자신의 투가리(뚝배기의 사투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칩니다. 순간 투가리와 투가리가 부딪쳐 내는 그 소리가 어찌나 서럽던지. 감정이 북받친 아들은 그저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만 우걱우걱 씹어댑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가만히 돌아섭니다. 순간, 아들은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을 끝내 붙잡지 못하고 맙니다. 아들은 얼른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어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서, 서럽고도 뜨거운 눈물을 천천히 씻어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입니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시 한편을 낭송하던 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이 시를 가져 왔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라 평소와 달리 좀 더 많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이염을 앓고 있지만 아들을 위해 고깃국을 먹자는 어머니, 애써 시선을 돌려 외면하며 조심스레 깍두기를 놓아두고 돌아서는 주인아저씨, 그 따뜻한 배려에 그만 눈물이 흐르고, 어머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이마의 땀을 훔쳐내는 아들. 이들의 마음이 우리에게 투가리처럼 자꾸 ‘툭툭’ 부딪혀와 마음을 울립니다. 학생들에게 진정한 배려는 이런 것이라고, 마음을 다한 것들은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으로 파고들어와 마음으로 ‘툭’ 부딪친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배려와 사랑을 이 시에서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자꾸 무얼 잃어버리길 잘한다는 J선생님. 학창 시절, 무얼 잃어버릴 때마다 애가 칠칠맞다고 엄마한테 꾸중을 들으면, 그때마다 아버지는 불쌍하다고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늘 자신의 손에 쥐어 줬다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언제까지고 잊지 못한다는 J선생님의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설렁탕 국물처럼 진하고 뜨거운 늙은 어머니의 사랑,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에 담긴 주인아저씨의 정겨운 마음, 어머니의 사랑이 스민 설렁탕을 짜디짠 눈물을 훔쳐내며 먹는 아들, 오백원 동전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 배려에는 사랑이 따릅니다. 나 아닌 누군가를 살피며 그 사람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쓰는 일은,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나이가 들어, 훌륭한 사람이란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렇게 남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로 훌륭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근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꾸 툭툭, 깨닫고 있습니다.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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