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하지왕과 박지, 서희 일행을 태운 용선은 금관가야항에 내렸다. 옛날 우사와 함께 금관가야에 왔을 때에 비해 도읍은 훨씬 쇠락해 있었다. 항구의 배들은 줄었고, 고상식 가야창고에 사다리를 타고 줄지어 오르던 물하들도 보이지 않았다. 묶여 있는 낡은 배들 위에는 갈매기들이 앉아 끼룩끼룩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남정은 결과적으로 금관가야를 황폐하게 하고 대가야를 흥왕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왕 일행이 금관궁에 들어가자 마침 이시품왕이 북청마루에서 망궐례를 하고 있었다. 망궐례를 집행하는 자는 아라수병들이었다.

수병장이 이시품왕의 앞에 서서 말했다.

“그럼, 장수대왕이 계신 고구려 국내성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겠습니다.”

아라 수병장의 명에 따라 북청에 모인 왕과 대소신료들은 일제히 북의 국내성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장수대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망궐례 의식이 끝난 뒤 이시품왕과 하지왕 일행이 퇴락한 채 보수도 제대로 되지 않은 대정전에서 만났다.

너구리 이시품왕은 그간의 소식을 들은 듯 반갑게 하지왕을 맞이했다.

“아이고, 이게 뉘신가요. 청년대왕 하지왕께서 어떤 일로 이런 누추한 곳을 방문하셨습니까. 대가야의 왕으로 복귀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대가야를 비롯해 다 주변 가야제국의 왕과 한기들의 덕분입니다.”

이시품왕은 염소 수염의 박지를 보며 의외인 듯 말했다.

“헌데 박지 집사는 아직도 대가야에 그대로 눌러 있는 모양이오?”

이시품왕은 박지가 신라군을 대가야에 끌어들여 정변을 일으키고 하지왕을 쫓아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역의 수괴인 박지는 가장 먼저 참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하지대왕님의 무변광대한 은택으로 지난날의 허물을 용서받았습니다. 지금은 집사가 아니라 외교를 담당하는 교신지로 왔습니다.”

이시품왕은 하지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잘한 일이오. 박신지 만큼 외교에 탁월한 자가 없지요. 인재는 피아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써야 하지요. 자, 영빈각으로 갑시다.”

금관궁의 영빈각에는 옛날 해상제국의 맹주였던 금관가야의 위용과 화려함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두리기둥은 금칠한 비룡으로 휘감겨 있고, 회의 탁자와 의자는 값비싼 흑단목으로 꾸며져 있었다. 금관가야 술이 나오자 서희가 일어서서 고배에 술을 따랐다.

너구리 이시품왕이 자태가 고운 서희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물 맑은 대가야천에 미인들이 많이 난다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손님맞이 술이 돌면서 의례인사가 끝나자 노회한 염소 박지가 너구리 이시품왕에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하지대왕께선 승하하신 광개토태왕으로부터 대가야의 왕으로 책봉받았습니다. 그리고 왕께서 방금 망궐례를 행하신 장수대왕의 누이동생 상희왕비와 함께 대가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아이고: 【S】aighu(아이구), 【E】not utterable. 말할 수 없는. ‘ai’는 부정(no), ‘ghu’는 ‘句’(구), 즉 ‘말’이라는 뜻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