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부족한 시대 상황속
중년기 부모가 세상 변화 인지해
성인 부모-자식 관계 재정립 필요

▲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오랜만에 20년 넘게 사택에서 함께 살았던 아낙들의 계모임에 다녀왔다. 남편 직장 따라 울산에 와서 아이 키우며 의지하고 살아온 형제자매 못지않은 공동체다. 20대 후반의 새댁들은 이제 반백의 중년이 되었고, 주된 수다는 건강과 여행, 그리고 20대 자녀들의 진로와 결혼이었다. 취준생 자녀를 둔 한분이 “이제는 알바를 그만두고, 집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을 좀 편하게 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평생 일할 건데, 직장생활하면 아들 얼굴보기도 어려울 건데…”라고 생각하니 좀 너그러워 지더라는 거다. 자조 섞인 그 말씀이 서글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큰 울림으로 들려왔다.

실제 통계청(2017.12) 발표는 지난해 청년실업이 최악이었고, 2018년 5월 고용동향에서도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 다달이 고용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교육부의 전국 대학생 졸업유예자 현황은 1만50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이 드문 게 현실이고, 대학가는 취업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학교에 소속을 가지고 원하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졸업을 늦춘 대학 5, 6학년이 수두룩하다. 이들을 학교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둥지족,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족이라 부른다. 또한 늘어난 취업준비 기간을 버티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대딩’과 ‘직딩’의 징검다리 아르바이트생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취업준비를 위한 실제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없고, 결국 직장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장기적인 취준생의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인 청년문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거다.

중년 아낙들의 모임에서 묻지 말아야 할 3대 경범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남의 집 자식이 대학을 들어갔는지? 어느 대학을 갔는지’이고, 두 번째는 ‘대학은 졸업했는지? 취업을 했는지?’ 그리고 세 번째는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낳았는지? 별거나 이혼 없이 잘 살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묻지 말아야 할 경범죄는 사실 20~30대 한국사회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며, 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어렵고 아픈 심정을 헤아려 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성공을 담보하는 목표점이 되어왔다. 대학을 제대로 못 가면 취업을 제대로 못 할 거고, 취업을 제대로 못 하면 그 삶이 힘들 거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더욱이 경기침체로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다. 현실은 보다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고, 스팩을 위한 열정 페이에 내몰리게 된다. 유치원부터 시작된 선수학습과 과다경쟁으로 장기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온 청년들은 이제 심리적 불안과 우울을 하소연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프리터족(프리 Free와 아르바이트 Arbeit의 준말)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알바몬’ 조사(2017)에 20세 이상 성인 아르바이트 종사자 중 56%가 ‘나는 프리터족’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러니 다음 세대에게 연애도 결혼도 기대하기 어렵고, 비혼 경향과 저출산 문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최근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필자에게 기존의 아동-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대상 부모교육이 아닌 20~30대 미우새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RE 부모교육을 요청해 왔다. 청년기 자녀를 둔 중년기 부모들이 어떻게 세상의 변화와 세대차를 이해하고, 청년기 자녀들과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거다. 이제 경제적 지원 등 부모자녀 간 갈등과 심리적 한계를 점검하고, 적절한 독립과 분리의 대안이 필요해졌다. 고령화 사회, 성인부모와 성인자녀로 부모자녀 관계 정립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겨주는 따뜻한 공동체, 어릴 적부터 봐온 그 녀석들의 근황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기를 소망해 본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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