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과 박지는 금관가야와 군사동맹을 맺은 후 안두루왕의 아라가야로 향했다. 아라가야에는 가야연맹체의 맹주인 안두루왕이 제국회의를 소집해 대가야를 치고자 연맹군을 모으고 있었다. 안두루왕은 얼굴이 펀펀하고 몸집이 비대하고 배가 나왔으며, 성정이 포악하고 여색을 탐하는 멧돼지 같은 자였다. 하지만 안두루는 젊은 시절 절에 들어가 학문과 무예를 열심히 연마하며 가야연맹회복의 웅대한 뜻을 키워 나간 청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준수하면서도 위엄이 서려있었고, 힘도 좋아 아라가야 씨름 경연에서 승리한 적이 있는 천하장사였다. 이후 아라가야의 한 마을의 주수가 되어 읍락을 잘 다스렸다.

그의 첫 출병은 아라가야에서 왕이 죽자 축지의 아들인 사조가 반란을 일으켜 아라궁을 점거했을 때였다. 신지와 읍차, 주수들이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속속들이 깃발을 들고 아라궁의 남쪽 아라벌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며 아라궁을 쳐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왕의 먼 친척이었던 안두루도 촌락의 부병을 모아 아라벌로 갔다.

아라벌에 모인 장수들 가운데 지리산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읍차 회수가 반란군의 대장임을 자처하며 자기의 힘을 믿고 거드럭거렸다. 눈에 거슬리면 주수의 얼굴에도 함부로 침을 뱉으며 안하무인격으로 막사를 휘젓고 다녔다. 회수는 모든 장수들이 자기 앞에서 깎은 배처럼 사근사근하게 구는데 유독 안두루만은 풀 먹인 삼베처럼 빳빳한 게 영 비위에 거슬렸다.

“어이, 네가 씨름판에서 이겨 송아지 한 마리를 탔다고 뻐기는 안두루냐?”

“회수,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기에 대장부인 줄 알았더니 쥐새끼 같은 놈이군!”

“뭐야, 이 개똥이나 씹을 놈아! 죽여 버릴 테다.”

“좋아. 우리가 싸우기 전에 여기 장수들 앞에서 한 가지 약조를 하지.”

“무슨 약조?”

“싸워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의 등짝에 매질을 하기, 어때?”

“좋고말고. 그 전에 네 놈을 반 토막으로 꺾어 주마!”

회수가 수박덩이만한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선제공격을 해왔다. 안두루는 몸을 살짝 낮추어 주먹을 피하며 강하게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어이쿠.” 회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낭심을 감싸 쥐며 비틀거렸다. 안두루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회수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윽’ 회수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얼마나 강하게 충격을 받았던지 회수는 정신을 잃고 한식경 후에야 깨어났다. 안두루는 약속대로 20명의 장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회수의 등짝을 매질했다. 회흘은 바지에 오줌을 지렸고, 이후 아라가야의 장수들은 안두루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들었다. 안두루는 장수들을 이끌고 아라벌에서 아라궁으로 진격해 반란군을 무찌르고 아라가야의 왕이 되었다. 이후 안두루는 여가전쟁에서도 승승장구하여 전공을 세웠으나 세 불리를 깨닫고 고구려군에게 금관가야의 왕이 사로잡히기 직전 광개토왕에게 은밀히 항복하여 전후 금관가야에 수병을 주둔시키는 권한을 얻었다. 여가전쟁 이후 그는 잃어버린 절반의 고토를 회복할 생각이 없이 술과 여색에 빠져 가야연맹체의 수장에 만족했다. 하지만 대가야가 비화가야를 치자 그는 대가야를 멸하기 위해 곧바로 제국회의를 소집해 가야연맹군을 모았다.

 

우리말 어원연구

술:【S】surai(수라이), 【E】liquor, wine.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술과 궁중요리를 통칭한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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