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아라가야 안두루왕이 소집한 제국회의에 11가야를 대표하는 왕과 한기, 집사들이 참석했다. 여가 전쟁 전 가야제국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영토는 낙동강 이동에 독로국과 미리미동국 2국, 낙동강 이서에 접도국, 고자미동국, 고순시국, 반로국, 낙노국, 미오야마국, 감로국, 주조마국, 안야국 등 12국, 그리고 소백산맥 너머 옛 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인 상기문, 하기문,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까지 합쳐 24국에 이르렀다.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가야 침공으로 종발성과 금관성이 진멸된 뒤, 소백산맥 이서의 6국은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낙동강 이동의 가야 땅인 미리미동국과 독로국 성산가야 등 6국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아라가야 안두루왕이 지배하는 땅은 12가야로 축소되었다.

이들 11개국은 아라궁 맹회루에 모였다. 맹회루는 대청이 지상으로부터 열 자 높이로 떠 있고상식 건물이어서 조망이 탁 트여 눈맛이 시원했다.

안두루왕이 11가야의 대표들에게 말했다.

“원로에 오시느라 수고들 많았소이다. 지금 우리 가야제국은 나 안두루왕의 통치 하에 유례없는 번영과 평화의 시대를 누리고 있소.”

안두루왕의 말에 11가야의 대표들은 데면데면한 얼굴이었지만 안두루왕이 깔아놓은 자리인 만큼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동안 큰 전쟁은 없었으나 가야제국은 절반으로 축소되었고 남해안에 왜인들의 침입과 노략질은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 왜의 간섭 하에 자주국으로서의 가야의 존재감은 점점 흐릿해졌다.

“헌데 가야의 반역자인 하지가 대가야의 왕위를 다시 찬탈한 뒤 반란을 시도하고 있소. 이들 대가야군은 비화가야를 점령하고 마른재를 넘어 이곳 아라가야를 향하고 있다고 하오. 하지의 목적은 한 가지요. 자신이 가야를 정복해 전 가야 땅을 통째로 고구려 장수왕에게 바치려 하는 것이오.”

안두루왕의 말에 대표들이 웅성거렸다.

“하지가 나라를 정복해 수장이 되면 우리만의 고유한 가야연맹체는 사라지고 여러분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식읍을 받는 왕과 한기, 집사직도 없어질 것이오. 여러분이 하지에게 항복을 하더라도 고구려 신라 백제처럼 한 왕 아래 한낱 쥐꼬리 만한 녹을 받아먹은 신하, 병졸로 전락할 것이오.”

안두루왕의 말에 대표들은 비로소 공감하고 공분했다.

“나라의 통치권을 빼앗다니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린가.”

“우리의 식읍을 거두어가고 거지나 다름없는 녹신으로 만든다는 것인가.”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전통적인 연명체제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감히 갈아엎겠다는 겐가. 만장일치로 연맹군을 결성해 놈을 잡아 죽입시다.”

“옳소!”

그때 타도 대상이 된 대가야의 박지가 제국회의 석상에 나타났다.

 

우리말 어원연구

금관가야(김해), 독로국(동래), 미리미동국(밀양), 접도국(칠산), 고자미동국(고성), 고순시국(진주), 반로국(고령, 대가야), 낙노국(하동 악양), 미오야마국(합천 묘산), 감로국(김천 감문), 주조마국(김천 조마), 안야국(함안),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로 비정된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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