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 위기와 함께 암운 드리운
울산의 앞날 걱정에만 그쳐선 안돼
지역사회가 함께 새 비전 찾아내야

▲ 이태철 논설위원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아귀한텐 밑에서 한장. 정마담도 밑에서 한장. 나 한장. 아귀한텐 다시 밑에서 한장.” 수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타짜’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명 대사다. 주인공 고니가 적 아귀에게 마지막 한 수를 던지며 속으로 되뇌었던 것으로, 자신의 수가 뻔히 읽히리란 걸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은 항상 등 뒤에서 닫힌다’는 부제가 암시하듯 돌이킬 틈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승부사의 인생을 들여다 보게 한다.

“아찔하다…. 쇠망치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듯 멍하다. 이래도 괜찮은가 싶다. 그러면서도 이내 걱정을 멈춘다. 설마 울산이 망하기야 하겠어.” “명색이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인데…. 글로벌 기업이 즐비한 울산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하는 것 아냐. ‘대마불사’라고 우리 회사는 괜찮을거야.” “회사가 어렵다고. 언제는 안 어려웠나. 회사의 미래, 우리가 알게 뭐야. 받을 수 있을때 양껏 받아내야지.” 울산에서 흔히 마주치는 작업복 차림의 일행이 주고 받은 대화의 잔상이 혼자만의 생각과 겹친다.

울산의 앞 날을 걱정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걱정 아닌 걱정을 늘어놓는다. 산업수도 울산의 밑바탕으로, 못 이룰 것 없었던 자신감은 어느 사인엔가 ‘할수 있을까? 될까?’라는 의문부호로 바뀌었다. ‘산업 입국’ ‘큰 울산’을 향한 열망은 울산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엑소더스’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한국판 러스트벨트화(미 중부의 쇠락한 제조업지대)’를 우려하고 있다.

울산의 주력산업인 조선업종 부진으로 시작된 구조조정의 회오리 바람이 지역 사회를 강타, 수많은 사람이 일터를 떠나고 있다. 남아 있는 사람도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수주절벽’에 시딜리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오는 8월부터 해양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5600여 인력의 고용문제가 달려 있지만 대안이 없다는 회사측의 설명이다. 또 하나의 주력산업인 자동차도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중국에서의 판매부진 탓이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울산에서 생산하는 차가 세계 시장에서 더 이상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나 최우선적으로 들고 있는 것이 낮은 생산성에다 강성노조의 잦은 파업이라고 한다. 유럽을 향하고 있는 미국의 ‘관세폭탄’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 쳐진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없는 울산은 과연 어떨까?’

2012년 수출 1000억불 시대를 개막하면서 ‘장밋빛’ 일색이었던 울산의 미래였다. 2013년 내리막 조짐을 보여도 일시적인 것으로 여겼다. 퇴조기미를 보여왔던 주력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에 대한 숱한 의문에도 울산 노·사·정의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기존 주력산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첨단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구호의 난무속에서 기업의 미래는 기업이, 기업주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 가운데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책임을 떠 넘기는 노사간 집안싸움 소식이 들려온다.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지방 정부는 ‘강건너 불구경’이다. ‘노사문제는 당사자 해결이 원칙’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다 정리하고, 조그만 건물이나 하나 사 월세나 받아 먹는게 속편할 것 같다”는 기업인들의 푸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고, 제한된 희망속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강력한 리더십이 아쉬운 순간이다. 곧 시작될 민선 7기 지방권력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볼 일이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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