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최대 규모의 울산시립도서관
여가·교육 여건 개선 소중한 자산
울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길 기대

▲ 손진락 전 대한건축사협회 울산광역시회장

도서관이라고 하면 학창시절 시험공부를 하고 고가의 책과 구입이 어려운 전문서적 등을 대출하는 곳이며 또한 항상 정숙해야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 도서관 현상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비록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그 도서관이 건립된 후 그 곳에서 건축사 시험공부를 했다. 학창시절 이후로 건축사 시험공부를 하던 성인이 되기까지 도서관에 대한 변하지 않는 이미지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엄숙하며 때로는 불편하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오래전 미국 애틀랜타에서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미국은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었고 필자가 간 곳은 동네 도서관보다 좀 더 큰 카운티 도서관이었다. 그곳은 필자가 가지고 있던 도서관의 개념과는 사뭇 달랐다.

도서관의 한 곳엔 아이들이 운동하고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고, 책 뿐 아니라 비디오와 음반 등 다양한 것을 대여해 주고 또한 다양한 강좌와 행사가 열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특히 어린이 열람실은 책만 비치돼 있지 않고 인형과 장난감도 함께 있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미국의 도서관은 노숙자들도 편하게 들어 올 수 있어 그들이 책도 보고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하며 잠시 쉬기도 했다. 공공도서관은 많은 곳에 세워져 누구나 문턱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화인프라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도서관은 대지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건물과 자연을 융합시켰다고 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최고의 업적 중 하나로 내세웠던 국립도서관은 만인의 공간과 자연과 건축물이 연계된 개념의 건축물로서 책 4권을 반쯤 펼쳐 놓은 것을 상징하는 79m 높이 ‘ㄱ’자 직각건물 4동이 네 귀퉁이에 배치돼 있다. 땅을 파내 지하 두 개 층에 고요한 열람실을 만들고 그 가운데 인공 정원을 꾸몄다. 인근 숲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꾸민 지하 정원은 독특한 구조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도서관에서 자연을 사색하도록 만든 프랑스인이 너무 부러웠다. 미테랑 대통령의 꿈이 담긴 그곳을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도서관 중의 하나라고 한다. 프랑스식 허영심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무모한 시도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도서관으로서 기능과 건축의 아름다움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서구 도서관의 장점을 바라보면서 생겼던 필자의 부러움이 자부심으로 바뀐 것은 이제는 우리 울산에서도 그런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다. 먼저 작년에 준공돼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매곡도서관이다. 가족을 위한 숲속 공원을 닮은 도서관으로 나무에서 모티브를 따온 입면의 수직 루버가 상징적이다. 숲처럼 펼쳐진 열람실의 서가를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통해 산책하듯 거닐 수 있는, 장애자와 노약자에게 불편함이 없는 무장애 건축물이라는 장점도 있다. 기존의 도서관들은 어린이 열람실과 일반열람실은 엄격하게 분리돼 있지만 매곡도서관은 1층의 어린이열람실과 2층의 일반열람실이 하나로 통합돼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

며칠 전에는 광역시 중에 유일하게 시립도서관이 없었던 울산에 광역시 승격 21년 만에 생긴 울산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어 오래전 애틀랜타에서 봤던 도서관과 비슷한 이미지가 느껴졌으며 국내 지역 대표 도서관 중에는 최대 규모로 이에 걸맞게 많은 책이 비치돼 있다.

독서 인구의 성장을 위해서는 도서관의 역할이 출판사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이런 필자의 기대 가운데 울산은 불과 몇년 사이에 한 뉴스의 헤드라인처럼 책 읽는 도시로 성큼 다가 선 것 같다. 무엇보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울산에 이런 도서관이 세워짐으로써 여가생활과 교육여건이 개선될 수 있는 점에서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울산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상업 건축물이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일이지만 도서관과 같은 공공건축물이 우리 울산을 대표한다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될까 하는 행복한 기대를 해본다.

손진락 전 대한건축사협회 울산광역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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