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그리고 세상을 읽는다. 4.울산대왕암공원

▲ 최종국. 울산대왕암공원. 140x50㎝. 한지에수묵담채.

사계절길…송림길…전설바위길…바닷가길
울산 대왕암공원 네 곳의 길을 따라 걸으면
바람과 바다가 우리에게 전하는,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 삶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울산 대왕암공원 주소는 울산광역시 동구 등대로 95(일산동)이다. 이 주소를 입력하면 네비게이션은 우리나라 동남단에 위치한 동해 쪽으로 뻗은 대왕암공원 주차장까지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해준다. 그러나 네비의 길은 이곳에서 멈춘다. 차에서 내리면 바람과 바다가 대왕암에 이르는 네 곳의 길을 안내한다.

먼저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바다 바람과 함께 다녀가는 사계절길은 공원의 중앙통로인데 흙길과 돌길이 중간 분리대를 두고 동백나무 울타리를 따라 나란히 간다. 그 길에는 붉은 동백꽃이 땅에 떨어져 겨울을 데우는 날이 있다. 유치원 애들의, 노란 옷과 웃음이 개나리꽃처럼 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목련은 처녀 선생님처럼 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하게 웃었다. 봄바람이 벚꽃을 흩뿌릴 때 왕벚꽃도 따라 번지 점프를 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송림길로 대왕암공원의 원주민들인 소나무 무리(솔숲)가 낸 시간을 견디며 바람과 싸우기도 하고, 바람과 놀기도 하면서 넉넉하고 아늑함을 안겨주는 길이다. 그것은 바람 맞으며 살아온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를 생각게 하는 길이다. 이 길의 사랑은 어떤 법칙이 없는, 즉 무법이기에 사랑하는 길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세 번째는 전설바위길로 일산해수욕장 쪽에서 해안길을 따라 난 둘레길이다. 날마다 부서지면서 부서지지 않는 모래밭을 지나 대왕암 계단을 오르면 된다. 현대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선박과 골리앗 크레인이 가까이 보인다. 이 길을 걸으면서 보는 ‘수루방’(숭어잡이 할 때 망을 보던 자리로 ‘수리바위’라 함)이나, 못된 청용이 있어 굴을 돌로 막아 못나오게 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용굴(덩덕구디)’과 ‘할미바위’나 옛사람이 갓 속에 쓰는 탕건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탕건암’ 등의 전설이 깃든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들이 과거의 전설이라면 우리나라 조선업을 일으킨 현대중공업은 현재의 전설이다. 정주영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업과 경제를 일으킨 산업 역군들의 이야기는 마치 대왕암을 중심으로 공원 주변 해안의 여러 바위의 전설을 연상하게 한다. 전설은 증거물이 있는 이야기이기에 오랫동안 전해진다.

▲ 울산대왕암공원.

네 번째는 바닷가길로 슬도에서 성끝마을과 대왕암 캠핑장 밑 해변 길을 따라 몽돌 해변과 전망대 등을 지나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안 둘레길이다. 칠레의 시인 파블르 네루다를 다룬 영화 ‘일포스티노’에 나오는 이탈리아 카프리 섬의 해안보다 더 빼어난 풍광과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시를 짓는 대신 섬의 아름다운 파도소리를 녹음한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울산 대왕암 공원 몽돌해변에서 파도가 날마다 연주하는 바다 소리를 따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영화 속 카프리 섬의 파도소리는 대왕암 공원의 솔숲과 어우러진 바람소리를 받아 여러 형태의, 매끈한 몽돌들이 내는 소리의 변화와 진폭처럼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산 대왕암공원의 사계절길과 송림길, 전설바위길은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가진 울기등대가 있는 울기항로표지 관리소에서 끝난다. 1906년에 점등되어 동해를 지나는 선박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던 울기등대는 구등탑(높이 6m)과, 주변 해송들이 해안이 보이지 않자 1987년 새로 세운 신등탑(높이 24m)이 있다. 동해 바다의 안내자인 울기등대(울산지방해양수산청 소속)는 현재 전시체험 공간과 민박 숙소 제공, 등대문학상과 문학 전망대를 마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바다를 밝히는 명소가 되었다. 바닷가길은 대왕암 바위섬에서 끝난다. 1995년 현대중공업에서 건립 기증한 대왕교가 있어 갯바위 끝까지 갈 수 있다. 황토빛과 불그레한 색이 어우러진 바위섬에 아래는 검고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멀리 바다 속을 탐색하는 시추선이 보이고 화물선과 어선 등의 선박들이 바닷길을 따라 가고 있다. 바람은 파도를 타고 갯바위를 넘어 해안으로 대왕암 공원으로 불어온다.

울산 대왕암공원 네 곳의 길을 따라 걸으면 바람과 바다가 우리에게 전하는,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 삶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비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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