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미디어국 이재명 선임기자
지난 7일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였다. 소서는 사흘이 멀다하고 비가 내리는 장마의 중심에 있다. 기온과 습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농작물은 하룻밤 사이에 수십센티까지 큰다. 소서의 최대 화두는 풀뽑기다. 그 중에서도 피는 반드시 뽑아야 하는 척결 1호다. 벼가 지체 높은 상전이라면 피는 상놈 중 쇠상놈이다.

‘피사리’는 모를 심은 뒤 솎아내는 것을 말한다. 상북면 등억마을 들판에는 허리 굽은 노인들이 무논을 첨벙거리며 피를 뽑는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산골 논에 허리가 펴지지 않는 노인들이 ‘노란 하늘’을 쳐다보며 푸르렀던 시절을 회상한다.

예부터 ‘상농(上農)은 풀(피)을 보지 않고 김을 매고, 중농(中農)은 풀(피)을 보고야 비로소 김을 매며, 하농(下農)은 풀(피)을 보고도 김을 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피 다 잡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속담처럼 피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는 애초 곡식이었다. 중국 고전 <주례>에 오곡(五穀)은 벼·기장·피·보리·콩 5가지를 말한다. <예기>에는 벼·기장·피·보리에 삼(麻)을 포함한다. 그러다 피는 언젠가부터 벼의 혐오스런 천적이 되었다. 잡초라고 비웃고, 맛없다고 천대했다.

피는 벼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불굴의 자생력으로 모진 목숨을 살려간다. 땅이 쩍쩍 갈라지는 논에서도 살고, 습도가 최대치까지 올라가도 살고, 추운 산꼭대기 1500미터에서도 자란다. 피는 단백질, 지방질, 비타민B1가 많고, 오래 저장해도 맛이 안 변한다. 사람들은 굶주림에서 인간을 살려내는 작물을 ‘구황(救荒)’이라고 말하는데, 피가 바로 구세주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라는 표현은 ‘피죽 한 그릇’의 소중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과거 지리산에서 은거했던 빨치산들은 피죽을 끓여 연명했다.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은 피를 작물로 재배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피밭골’ 또는 ‘직전(稷田:피밭)’이라고도 불렸다. 피아골은 ‘피(血)’가 끊임없이 흘렀던 곳이다.

피아골에서 의병장 고광순은 을사조약에 비분강개해 의병 30명과 통렬한 운명을 같이했다. 남부군의 총사령관을 지낸 이현상은 피아골을 거쳐 9월 빗점골에서 붉은 단풍과 함께 투쟁을 마감했다.

“우리네 산에 들에는 하늘을 찌를 듯 키큰 나무들도 많지만 풀벌레와 같이 자라는 키작은 들꽃들은 더욱 많습니다. 바람부는 날 바람 따라 산에 들에 피는 들꽃 이름을 불러보면 오래 소식 끊긴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매듭풀 절굿대 노랑하늘타리 딱지꽃 모시대 애기똥풀 개불알꽃 며느리배꼽 꿩의다리 노루오줌…덕팔이 다남이 점순이 간난이 끝순이 … 불러보면 볼수록 정겨운 들꽃 이름들 속에서 순박했던 코흘리개들이 웃습니다.”……‘들꽃 이름’(권달웅) 디지털미디어국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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