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철 청운고 미술교사

새 시장이 충분히 미술관을 제대로 지을 수 있도록 검토할 시간을 줘야 한다. 되짚어 보아야 할 것들은 묵살된 여론(객사+미술관 융합시설)과 문화재청과의 협의 부실, 미술관 정체성·가치에 대한 시민 이해도 결핍, 미술관 기본계획·자문회의 자료 공람 및 홍보 부실, 미술의 원형(반구대 암각화)을 가진 도시로서 또 광역단체 가운데 마지막으로 공립미술관을 짓는 도시로서의 특화성 미흡, 미술관 주변 특화전략과 도시계획적 지원 미흡(주차장 면적), 미술관건립 조례없이 미술계장이 주도하는 문제, 미술관건립자문위 인적구성의 경직성, 미술관건립준비단 구성과 관장 선임문제 등이다. 부지는 건축형식과 운영측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은 시민의 자존심과 예술취향 나아가 주변의 도심재활에도 파급된다.

이런 요소를 감안하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할 당위성이 있다. 부지 문제는 아직도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다. 미술관 부지는 본래 전 울산초등학교 교지(校地)였다. 그보다 훨씬 앞서 이 학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객사(客舍) 터라고 것이 알려져 있었다. 이곳은 원도심의 핵이자, 역사적 장소성이 뚜렷한 곳이었다. 교실을 털어내고 땅을 파보니 객사 흔적이 나왔다.(교실을 헐지 말고 그대로 미술관 부대 용도나 레지던시 용도로 사용하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묵살됐다) 문화재청은 이곳에 대해 역사유적이니 보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김기현 시장이 객사를 복원한다는 언명을 먼저 해버렸다. 여론수렴 절차도 없었다. 도시계획위원회나 문화재심의위원회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 거기에 이미 결정됐던 미술관 부지를 혁신도시로 옮길 의사를 밝힘으로써 파란을 일으켰다.

결국 김 시장이 마음을 돌려 원도심 건립으로 굳혔다. 1년을 소모한 뒤 중앙정부 보조예산을 써야 하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결정한 것이 울산초등 옆 북정공원도 없애고 그 옆의 중부도서관을 헐어낸 자리에 미술관을 짓는 것이었다.

이 결정은 안착된 것처럼 보였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미봉책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객사 터와 미술관이 공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당국에서는 받아들일 자세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미술관 설계는 헐어낸 도서관 자리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원래 미술관 예정지인 울산초등 부지는 어느 세월에 지을지 모를 객사 예정지로 덩그러니 남았다. 어떤 시민은 끙끙 앓고, 어떤 시민은 응어리가 고였다. 시격(市格)이 손상되고 시민의 예술정신이 묵살됐다는 반감이 쌓였다.

필자는 한 시민으로서 여러 문제 중 부지 문제가 우선 마음에 걸린다. 단도직입으로 말해 왜 객사와 미술관을 함께 어울리게 짓지 못하는가! 나선화 전 문화재청장도 함께 짓는 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 청장도 객사와 미술관이 어울리도록 짓겠다는 의견을 중앙정부에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정갑윤 의원이 애를 써가며 중재한 결과였다. 나 청장은 경복궁 옆 옛 홍문관과 종친원 유적과 함께 어울리게 지은 서울미술관의 예까지 들어줬다.

울산시 문화예술과가 한 노력이라고는 딱 한 차례 문화재청을 방문한 것이었다. 실무자로부터 “거 참 어렵겠는데요”라는 말 한마디 듣고 돌아와 포기해버렸다. 저 완고하다는 문화재분과위를 단 한 번에 설득할 수 있을까? 그 결과 객사터는 남겨둔 채 중부도서관을 털어낸 자리에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억울하게 헐린 중부도서관은 울산 첫 공공도서관이었다. 이런 과정을 소상히 안다면 속이 터질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석연찮은 행정에 마음이 걸리지 않을 시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뉴욕 ‘하이라인의 변신’을 얘기한다. 공중철도 2.3㎞를 세계적 관광지로 만든 얘기다.

뉴욕 줄리아니 시장이 여러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철거지침을 내리고 퇴임하자 새로 부임한 블룸버그시장이 그 지침을 폐기하고 공원으로 변신시킨 스토리다. 철거서류에 이미 서명한 상태에서 새로 들어선 행정부가 바꾼 것이다.

아직 많은 시민은 미술관 부지를 조정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옛 유적 복원과 현대 미술관의 조화 또는 객사 안의 미술관, 최첨단 그래핀 소재를 이용한 건축물, 강변주차장을 시립미술관 지하주차장으로 옮겨 태화강 생태계를 완전 복원할 수 있는 찬스, 나아가 객사 건축미와 미술관 전시기능이 어울릴 기회를 가져보자. 과거와 현재를 교묘히 얽어 만든 울산시민의 정서와 솜씨를 보여줄 기회가 생겨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심상철 청운고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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