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듈형 축제를 상상한다

▲ 이정헌 서울뮤직위크 감독 영남대(예술행정학) 강사
민선7기 울산의 문화산업이 어떻게 달라지면 좋을까 생각하다 문득, 소프트웨어나 4차산업의 화두인 ‘모듈’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지역축제에 적용시켜보고 싶었다. 모듈은 서로 다른 것들의 융합과 변주를 동시에 행하는 개념이다. 음악이나 요리 분야에 널리 쓰이는 퓨전(Fusion)이나 자연과학 및 인문학에서 서로 다른 학문을 한데묶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통섭(Consilience)과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모듈화는 그보다 실용성이나 현실성이 더 강한 의미다. 핵심을 요약하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또다른 것과의 상호연관에도 유연해야 한다.

각 축제들이 독립적으로 기능하지만 서로 융합되며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는, ‘축제 모듈화’의 적절한 사례는 아마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일 것이다.

에든버러는 각기 독립적인 축제로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여러 축제들을 매년 8월 한달 동안 모두 치러내며 100만명에 이르는 체류형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축제의 중심은 전 세계 1100편 이상의 공연예술작품(단체)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수준높은 공연예술 프로그램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백파이프로 상징되는 스코틀랜드음악을 시초로 한 군악대 행진페스티벌인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도 있다. 여기에 북페스티벌과 국제영화제까지, 다섯개의 메이저급 페스티벌이 8월 내내 열리는 것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 거리공연, 음악 등 각종 프린지 페스티벌 열풍을 몰고 왔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난타’가 처음으로 선보인 해외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 페스티벌이자 새로운 작품들이 첫 선을 보이는 아트마켓이기도 하다. 1100개가 넘는 공연들은 거리, 공원, 광장, 교회, 극장, 학교 등 실내외 공공 장소를 중심으로 열리기에 100만명의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엄청난 돈으로 그 도시는 일년을 먹고 산다. 시민들에게도 큰 문화적 자부심과 즐거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세계 모든 공연예술 페스티벌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프린지 페스티발 묘미가 기발함과 신선함에 있다면 인터네셔널 페스티벌은 격식과 우아함에 있다.

에든버러성의 객석에서 즐기는 세계 최고 최대 규모인 유일한 군악대 행진은 다른 도시의 축제에는 없는 차별성과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이쯤되면 북 페스티벌과 영화제는 덤으로 생각해도 좋을 지경이다. 거의 모든 문화 소비적 취향이나 기호를 다 충족시키는, 먹을 것이 풍성한 종합선물세트가 바로 ‘8월의 에든버러’다.

울산의 축제를 여기에 적용시키려면 모듈화에 앞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축제 간의 통합과 경쟁력을 위한 조정과정이 필요하다. 음악분야로는 기존의 월드뮤직페스티벌과 뮤직 마켓인 에이팜 그리고 19회를 맞는 울산재즈페스티벌과 태화강 국제재즈페스티벌의 성격과 역할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미술분야의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와 판화페스티벌의 융합, 한글축제를 확대한 북페스티벌이 함께 개최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모듈화와 함께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축제와 기관, 해당 지역과의 클러스터도 가능하다. 울산박물관, 시립도서관, 장생포창작스튜디오, 동구대왕암공원은 물론이고 향후 건립될 시립미술관과 중구음악창작소도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태가 에든버러 프린지처럼 거리예술 중심이든, 울주산악영화제의 외연을 확대해 산악의 범주를 너머 환경, 자연, 단편·독립영화를 수용하든, 이들 영화가 거래되는 필름마켓을 오픈하는 일이든, 기존의 것들과 그 것들을 보완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어떤 방안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서울뮤직위크 감독 영남대(예술행정학) 강사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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