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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24)]인연이라는 끈태국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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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2  21: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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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1600m에 달하는 꽤 높은 산의 정상부에 자리한 도이 수텝(Doi Suthep) 사원의 내정. 태국인들이 상상하는 극락세계이리라.

출가는 사회위해 공덕 쌓는 기간
승려가 가정사·불화등 중재 처리
사원도 도심속 밀집 더불어 존재
일상생활 담는 사회 중심적 공간
이타심 가르쳐 건강한 사회 육성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태국은 전 국민의 90%가 불교신자인 부처의 나라다. 2만개가 넘는 불교사원이 있으며, 승려 수가 17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남자는 20세가 되면 출가하여 승려 생활하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으니 한국남자가 거의 군 출신이라면 태국남자는 거의 승려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교신앙을 갖고, 왜 그렇게 많은 사원이 필요하며, 무엇 때문에 승려가 되려는 것일까?

얼치기 가톨릭 신자인 내가 불교의 역사와 신앙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만 이를 피하여 태국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태국은 미얀마와 더불어 상좌부 불교의 종가 지위를 다툴 만큼 정통성의 긍지를 가지고 있다. 본래 스리랑카로부터 상좌부 불교를 전수받았으나 태국에 와서 크게 꽃을 피웠고, 스리랑카의 불교가 쇠퇴하게 되자 역으로 승려를 파견하여 법맥을 잇게 했으니 가히 종가집이라 우길 만하다.

상좌부 불교와 대중부 불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흔히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고 있지만 속된 표현일 뿐이다. 소승(小乘)은 개인의 구원을 지향하는 ‘작은 수레’를 의미하고, 대승(大乘)은 대중적 구원을 뜻하는 ‘큰 수레’로 비유되곤 한다. 한편 승려 중심의 ‘보수파’와 신자 중심의 ‘개혁파’로 구분되기도 한다. 소승이라는 이름처럼 태국불교는 개인의 구원만을 지향하는 것일까?

상좌부 불교의 핵심은 스님들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상가’라고 하는데 스님들로 이루어진 교단을 의미한다. 출가를 통해 승려가 되는 것은 최고의 공덕행이다. 태국인들에게 출가란 세속적 노동에서 벗어나, 경전을 공부하고 그 계율을 엄수해서 수행하는 과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출가는 본격적으로 사회를 위해 공덕을 쌓는 기간이며, 불교신자로서 성숙한 사회적 인간으로서 인격을 수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승려들은 공공기관의 여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대중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한다. 불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고, 고아들을 돌보며, 집을 지어주고,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보살행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에 승려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을 아직 선악이나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사원은 종교적 행위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을 담는 사회의 중심적 공간이다. 출산, 결혼, 장례 등 모든 일상생활이 불교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주민의 집회장이자 병원, 고아원, 양로원의 역할도 담당한다. 승려는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해 주기도 하고, 가정문제나 주민들 간의 불화도 중재하여 처리해주기도 한다. 정신적 구심점이며, 마음의 안식처로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함께하는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승려는 국왕도 꿇어앉아야 할 만큼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치앙마이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태국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유명한 사원이 있다하여 찾아간다. 시내를 벗어나 제법 험한 산악을 꼬불거리며 오른다. 해발 1600m에 달하는 꽤 높은 산의 정상부에서 사원이 나타난다. 도이 수텝(Doi Suthep), 그것은 사원의 이름인 동시에 산의 이름이다. 태국에서 산지 사원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그만큼 태국 사원은 도시에 밀집되어 도시인들과 더불어 존재한다.

가파른 309계단을 올라 2층 누각형 건물의 밑을 통과하여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예상과 달리 사원은 주눅들만큼 거창하지 않다. 다만 가로수처럼 서있는 황금 우산이 화려함을 예고한다. 중심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건물 군으로 둘러싸인 내정에서 휘황찬란한 부처의 세계가 펼쳐진다. 황금빛으로 치장한 체디형 스투파, 그 주변을 에워싸는 에메랄드 불상과 불전형태의 감실, 그리고 우아한 법당건축, 바로 태국인들이 상상하는 극락세계이리라.

한동안 넋을 잃고 스투파 주위를 서성인다. 한 불전을 들여다보니 노승이 앉아 참배객들에게 축복을 주고 있다. 무심코 들어가 스님 앞에 꿇어앉는다. 노승은 엷은 미소와 함께 “코리안…?”이라며 반긴다. 축문을 외우며 손목에 실을 감아주고 빗자루에 성수를 적셔 머리에 뿌려준다. 일어서려는데 “행복 하세요”라는 노승의 한마디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한순간 수많은 인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이 스님 또한 내게 축복을 해 주려고 이 자리에서 억겁의 세월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인연이 닿는 사람마다 축복을 줄 수 있다면 이미 부처를 이룬 것이 아닌가.

탐분(tham bun), 선업을 쌓기 위한 적선과 공덕. 그것은 내세를 포함하는 긴 시간의 안목으로 현세를 살아가는 의식이다. 태국인에게 출가는 최고의 공덕행이다. 이는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수도의 과정이 아니라 현세의 중생을 위한 인격의 수양과정이다. 그들은 출가를 통해 중생과 더불어 아파하고, 기뻐하고, 축복을 주는 보살행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건강한 사회라면 이타의 사회적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공존과 공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악다구니 같은 경쟁을 통해 강한 놈과 똑똑한 놈 순으로 줄 세우고, 차별화하는 세상이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닐 터. 나만, 우리식구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자본주의의 필연이라 말하지 말자.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 그들은 부처의 나라를 꿈꾸었으리라.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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