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주고받는 소식과 마음들
답변 보내기 주저되는 경우도 많아
생생한 소통 위해선 예의가 필요

▲ 김상곤 전 울산광역시 감사관

휴대폰 화면 속의 노란 앱 표시에 있는 빨간 숫자를 보면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나에게 우호적인 마음과 정성어린 언어로 만들어진 선물을 보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카톡으로 불리는 노란 앱 뿐만 아니라 비슷한 기능을 가진 파란 편지통과 주황색 편지통도 있다. 모두 누군가 나에게 소식과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전자우편 통로다. 아주 개인적인 현장체험에서부터 세상의 먼 소식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소통망이다. 그러나 화면속의 신속하고 생생한 소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적절한 반응과 예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 편지에 대한 알맞은 답변을 적당한 시간 안에 보내는 것이다.

오늘도 한통의 노란 편지를 받았다. 삶과 죽음의 간격, 그 가까운 거리를 너무 일찍 체험하고 떠나버린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하는 전달자의 소감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사람들을 울리는 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을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리다. 이런 편지는 언제 보아도 가슴이 먹먹하다. 보낸 이의 소감이 담긴 이 편지를 읽고 나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건성으로 쉽게 답하는 것도 보낸 이의 정성과 이야기의 무게에 비추어 적절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빠진다. 내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간격을 다시 한번 조정해 보고 그것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해 본다. 그리고 보낸 이의 소감 속에 있는 느낌도 한번 상상해 본다. 그리고 겨우 몇 마디로 줄인 노란 편지를 보낸다. 살아 있음에 항상 감사한다고. 언제 한번 보자고. 물론 시간을 정하지 않는 먼 약속이다.

또 내가 가끔 받는 편지 중의 하나는 몇 년째 은퇴시기를 가늠하고 있는 친구의 편지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이 편지에는 항상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친구가 보낸 이 편지에는 지난 날의 아름다운 기억에 대한 동경과 시간의 무상함에 대한 회한이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돼 있다. 휴대폰 화면을 넘기는 긴 편지를 읽고 나면 우선 험한 세파 속에서도 시들지 않은 친구의 감성에 감탄한다. 그리고 친구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 게으름을 새삼 탓하며 미안해한다. 이 장문의 편지에 대한 적절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하루 정도 묵혀서 다시 읽어 보면서 편지에 대한 고마움과 감성적 언어에 대한 느낌이 함께 포함된 언어를 찾아서 정리해 본다. 대부분 실패하고 결국 짧은 답신을 보내고 만다. 이런 경우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쓰인다.

적절한 반응을 찾기 쉬운 편지도 있다. 대개 사진이 동반된 경우가 그렇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찍은 증명사진을 꼬박 꼬박 보내오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이 편지는 보내는 이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답변에 시간이 걸리지 않고 또 내용도 비슷하다. 부럽다거나 좋겠다는 장단이면 족하다.

또 이런 편지도 있다. 수년간 휴대폰 화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식이 닿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친구로 초청하니 꼭 가입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이럴 경우 고민에 빠진다. 간곡한 언어로 보면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구라는 명칭에 걸맞는 소통이 이루어 질 것 같지도 않은 이 요청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찜찜하다.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대부분 응답을 회피한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편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편지는 대부분 선거를 앞두고 성행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부 인사도 예의를 필요로 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즈음 뭐하고 있느냐. 더운데 어떻게 지내느냐 등과 같은 인사편지를 받고는 건성으로 몇 번 답하거나 건너뛰다 보면 곧 편지가 뜸해진다.

또 어쩌다 편지를 받고 하루 쯤 뒤에 보게 되는 경우에도 적당한 답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대인들이 휴대폰 속의 편지 관리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손쉬운 노란편지가 깊은 침묵을 불러올 때도 있다. 오래 전에 받은 10자 남짓의 짧은 편지에 아직 나는 답장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살아있어서 고맙다”는 혈육과 같은 오랜 친구의 편지에.

김상곤 전 울산광역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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