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만 보면 주변 살필 여유 없어
진정한 통일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
안보 파수꾼으로 평화부터 지켜야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사막에서 생물들은 물을 어떻게 먹을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사막에서 물을 직접 만들어 먹는 곤충이 있었다.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에 살고 있는 ‘거저리’라는 딱정벌레다. 엄지손톱 크기의 이 곤충은 물을 얻기 위해 극심한 일교차와 안개를 이용했다. 이 곤충은 해가 뜨기 전에 모래 밖으로 나와서 300m 가량의 모래언덕 정상을 매일 올라간다. 사람으로 치면 에베레스트의 두 배 높이란다. 죽을힘을 다해 정상에 올라서서 경사면에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물구나무를 선다. 몸을 아래로 숙이면 등에 있는 돌기에 안개의 수증기가 달라붙는다. 곧이어 작은 수증기는 물방울이 되어 점점 커지면서 등을 타고 내려와 마침내 곤충의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 어떻게 이런 지혜를 습득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지만 그 다음이 대반전이었다. 힘들게 물을 얻은 ‘거저리’가 사막의 구릉을 넘어가는 바로 그때, 길목을 지키며 기다리던 포식자 카멜레온이 단숨에 긴 혀로 날름 삼켜버린다. 자연의 섭리라 하겠지만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신의 자비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인가. 집요했던 한 생명이 순식간에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영국 BBC에서 방영되었던 이 짧은 영상을 보면서 직업병인지 내겐 ‘쿵!’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30여 년간 군 생활 경험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냉엄한 최근 안보 상황이다. 자칫 다양한 우발 상황에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거저리’ 같은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아직도 우리가 서명하지 않았던 6·25 휴전협정서에 따라 그어진 155마일 휴전선이 65년째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 조립이 분해의 역순이듯 분해된 나라를 다시 조립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국민의 염원인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 군대가 하나로 되는 진정한 통일의 그날까지 평화분위기에만 휩쓸려서도 안된다. 올해 한미연합훈련도 을지연습도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 로마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안보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리라.

인생사도 그럴 것이다. 최근 어느 스님의 마지막 시구처럼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면 한순간에 목표 지향적 자만과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수도 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는 달려왔지만 미처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는 배려와 진정성을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도 “인생은 뒤돌아볼 때 이해가 되는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앞을 보며 살아가는 존재”라 했던가. 나 역시 마치 평생 현역일 것처럼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으니, 저 사막의 곤충과 무엇이 다르랴.

어느 조직에 파묻혀 적응하다보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여유가 별로 없다. 군에 있을 때는 나도 오직 군대만 보였다. 그동안 내가 무심했던 고향친구들, 함께 했던 전우들에게 조금 더 마음의 표현을 하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날 내가 몸담았던 조직은 내게 저 ‘거저리’처럼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눈앞에 닥친 위기대처 능력을 우선적으로 요구했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련다. 발걸음을 멈추련다. 그리하여 모래사막 위로 아름답게 내리는 석양빛이 가슴으로 스미는 여유가 생긴다면 조금은 쉼표가 있는 내 인생의 멋진 오후가 되지 않을까?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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